[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10> 공정위원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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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와 시장 친화 ‘조화의 손’ 지녀야

1997년 3월 김영삼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된 전윤철 위원장은 “기업들이 그만 풀라고 할 때까지 규제를 풀겠다”며 규제 완화를 최우선 목표로 내세웠다.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대기업 유상증자 한도 규제, 회사채 발행량 규제 등이 그의 손을 거쳐 폐지됐다.

하지만 1년 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공정위의 분위기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새 정부에서 유임된 전 위원장은 출총제를 부활시켰다. 또 대기업의 부당내부거래를 확인할 수 있도록 금융거래 명세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좌추적권’을 공정위가 갖는 등 각종 규제를 강화했다. 전 위원장은 “재벌개혁은 생존차원에서 다뤄질 문제로 개혁이 신속하고 확실하게 추진되도록 모든 법적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삼성, 현대 등 5개 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벌여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공정위의 역할은 ‘시장의 파수꾼’이다. 담합 등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처벌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해 시장경쟁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하지만 한국에서 공정위는 정치권력이 기업을 옥죄고 싶을 때 휘두르는 ‘칼’ 노릇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때문에 기업을 보는 정권의 시각이 달라질 때마다 공정위의 태도와 역할은 크게 바뀌었다.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힘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가 자칫 과도하게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경우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본래 목표와 달리 시장을 고사(枯死)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①경제민주화와 시장친화 균형 맞춰야

규제 전문가, 공정위에 근무했던 전직 고위 간부들은 새 정부에서 공정위원장에 오를 인물의 첫 번째 요건으로 ‘균형감각’을 꼽았다. 경제민주화가 새 정부 경제팀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의 경제철학과 호흡을 맞추면서도 과도한 시장 개입의 유혹을 스스로 억누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 정부는 공정위를 통해 대기업 신규순환출자 금지,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집단소송제 도입 등 경제민주화 공약을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같이 대기업 활동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정책들이다.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이미 “△△그룹이 공정위의 표적이 될 것”이라는 ‘살생부(殺生簿)’까지 떠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국내외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시장경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을 조절할 수 있는 인물이 공정위원장의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②정치 외풍에 맞설 소신 필요

역대 정부는 공정위가 가진 직권조사, 전속고발권이라는 칼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물들을 공정위원장에 임명했다. 정권 덕에 위원장 자리에 오른 이들은 ‘정치적 외풍’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권에 따라 역할과 태도가 바뀌다 보니 ‘불공정성’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위원장을 지낸 이남기 전 위원장은 SK그룹에게 자신이 다니던 사찰에 10억 원을 기부하도록 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2007년에 사면됐다. 자신이 직접 받진 않았지만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도움을 주고 기부금을 내게 한 것이다.

재벌개혁을 강조하며 출범한 노무현 정부 때에는 강철규, 권오승 전 위원장이 ‘대기업 지배구조’를 강요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강 전 위원장은 “삼성전자는 독립기업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 공정위원장이 직접 대기업의 지배구조 변화를 압박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권 전 위원장은 비판적 언론에 대해 “악의적으로 보도한 것에는 악의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감정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동수 위원장이 취임 초 ‘물가 당국’을 자처하면서 정유사, 이동통신사, 가공식품 업체들의 가격담합을 조사하고 나서 공정위 본래의 목적에서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자발성을’ 강조하긴 했지만 유통업체들에 판매수수료 인하 등을 강하게 압박해 권한의 한계를 넘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③조직 장악력과 소통 능력 갖춘 인물

공정위원장은 장관급 경제부처 중 드물게 비(非)관료 출신 위원장이 많았다. 현 김동수 위원장을 제외하면 노무현 정부 이후 4차례 연속 학자 출신이 위원장을 맡았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이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전문 관료 출신에 비해 정무적 판단이 약한 학자 출신들이 위원장을 맡았을 때마다 여론, 정치권과 불필요한 충돌이 자주 빚어졌고, 잔뼈가 굵은 공정위 직원들을 통솔할 만한 조직 장악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한 공정위 간부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공정거래법 등 각종 법안 제·개정이 예고되고 있는 만큼 여론 등 조직 안팎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대응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시장경제와 공정거래법에 해박하다면 학자든, 관료든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정부나 재계 등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잡음을 줄여 생산적인 정책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④소비자 정책 전문성과 의지 갖춰야

경쟁정책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소비자 보호 정책에 대한 이해도 새 정부 공정위원장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등 선진국 경쟁당국은 무분별한 ‘텔레마케팅’에 대한 제재나 블로그를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블랙 블로거(Black Blogger)’에 대한 규제방안을 마련하는 등 소비자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다.

2006년 한국소비자원 등 소비자단체 관련 기능 등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공정위로 넘어온 뒤부터 공정위는 소비자 정책을 전담해 왔다. 지난해부터 한국판 ‘컨슈머리포트’를 발표하는 등 소비자 정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소비자 보호 정책에 식견을 갖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인물이 요구되고 있다.

⑤규제 완화 등 글로벌 감각 필요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다른 나라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한국의 대기업들을 국내만 들여다보던 과거의 잣대로 판단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불합리한 규제를 완화해 한국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새 정부 공정위원장이 꼭 해야 할 역할 가운데 하나다. 세계의 선진 경쟁당국들은 이미 사전규제를 최대한 없애는 대신 경쟁 질서를 해치는 담합 행위 등에 대한 사후 감시와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과거와 달리 국내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황에서 출자제한 같은 일률적인 사전 규제는 적절치 못하다”면서 “이런 부분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가진 이가 공정거래위원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중·문병기 기자 tnf@donga.com
#박근혜#공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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