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차기정부에 바란다]<7·끝>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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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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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경제활성화와 병행하라

경제민주화는 대한민국 헌법에 있는 개념이다. 또 지난 선거 과정에서 여야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공약했으므로 국민적 합의도 있는 정책 과제다. 문제는 무엇이 경제민주화고,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라는 막연한 개념이 국민적 공감을 얻게 된 배경은 많은 국민이 지금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민생고를 경제민주화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가 추진해야 하는 경제민주화는 국민의 이런 기대와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돼야 한다. 그런데 선거 과정에서 경제민주화는 ‘재벌규제’와 ‘부자증세’로 변질됐다. 이것이 과연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지는 분명하지 않다. 기업 규제와 증세로 경제를 살리는 이론은 경제학에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 과정에서 경제민주화로 포장된 정책 묶음은 지난 20여 년간 역대 정권이 도입했다가 부작용이 너무 커서 폐지했거나, 도입하려다가 부작용이 우려돼 보류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순환출자 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금산분리,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그것이다. 유통산업에 대한 규제도 마찬가지다. 바람직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과거엔 왜 도입이 보류됐거나 폐지됐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무더기로 공약에 포함됐다.

전문적이고 복잡한 정책과제를 경제민주화라는 하나의 묶음으로 내세우는 바람에 개별 사안에 대한 합리적 토론이나 검증이 부족했다. 경제민주화라는 모호한 개념을 놓고 찬성이냐 반대냐의 논쟁만 있었을 뿐이다.

물론 재벌기업들의 지배력 남용과 불공정거래 행위, 대주주의 경영권 남용 등의 행위는 규제돼야 한다. 이런 행위는 현행법으로 이미 제재와 처벌이 가능하고, 실제로 몇몇 총수가 이 때문에 처벌을 받았다. 이런 문제는 있는 법을 제대로 집행하면 될 일이다.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고 계열사 수를 줄이고, 투자를 못하게 막아서 될 일이 아니다.

지금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는 일자리 창출, 가계부채 해소, 소득격차 완화, 복지제도 확충, 중소자영사업 활성화, 잠재성장률 제고다. 결코 쉽고 간단한 문제들이 아니다. 순환출자 규제, 금산분리 규제는 대기업 총수들의 경영권을 제약하고 그들이 지배하는 기업 수를 몇 개 줄일 수는 있을지 모르나 서민들이 겪고 있는 민생고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기업 투자를 위축시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재벌문제를 지배구조 변경보다 불공정행위 규제에 비중을 두기로 한 것은 매우 적절한 결정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양대 후보 사이에 하락하는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논의를 안 했다기보다 회피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 나라의 성장잠재력을 결정짓는 변수들이 무엇인지는 이미 경제학 교과서에 다 나와 있다. 또 한국 경제에 무슨 문제가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류 경제학자들은 다 알고 있다. 문제는 이런 처방들이 이익집단의 반발과 단기적 고통을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라는 점이다.

고착화되고 있는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시급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박 당선인이 공약한 각종 복지와 분배, 소득격차 해소 같은 정책과제는 달성이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임기 중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가 끝난 지금 박 당선인은 단기적인 고통과 이익집단의 저항을 극복하고 힘든 선택과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리더십과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것과 여론에 영합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향후 5년 동안 세계 경제의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위기가 반복적으로 한국 경제를 위협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외환위기 속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 취임 직후와 유사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박 당선인과 여당은 모든 공약을 한꺼번에 추진하려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우선 한국 경제의 생산능력과 성장잠재력을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임기 중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을 달성하는, 보다 실현가능한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신뢰와 원칙의 대통령이었는지는 임기가 끝나는 날 평가받으면 된다.

김종석 홍익대 경제학 교수
#김종석#박근혜#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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