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해임안 너무 가볍게 본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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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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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당리당략 발의 → 강창희 의장은 덜컥 직권상정
헌정사상 4번째 표결… 與 퇴장으로 정족수 안돼 폐기

민주통합당이 발의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19대 국회 첫 국회의장 직권상정에 이은 폐기’라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국회는 20일 밤 본회의에서 강창희 의장이 여야 합의 없이 김황식 총리 해임건의안을 상정해 표결까지 갔으나 의결정족수(151명) 미달로 투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 개표도 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이날 강 의장과 여야는 해임건의안을 놓고 몇 차례나 반전을 이어간 끝에 표결까지 갔다. 64년 헌정 사상 총리 해임건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까지 한 것은 이번이 4번째에 불과하다. 그만큼 국정 안정을 위해 신중하게 다뤄야 할 총리 해임건의안을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따라 너무 가볍게 여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오전 본회의가 열리기 전 민주당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대표단이 강 의장을 방문해 “김 총리 해임건의안을 꼭 처리해 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은 해임건의안에 반대하지만 반드시 (김 총리를) 해임해야 한다. 협조해 달라”는 뜻을 강 의장에게 전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해임건의안에 대한 표결 처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본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며 의원총회를 이유로 본회의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일단 본회의를 예정대로 진행하자고 주장했지만 강 의장은 한 교섭단체(민주당) 소속 의원 전원이 불참한 상황에선 본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며 회의를 연기했다.

이에 따라 오전 10시에 시작될 예정이던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이 오후로 연기됐다. 국회 파행을 염려한 강 의장 측은 오후 본회의에서 해임건의안 표결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홍일표 원내대변인이 “의사일정은 대부분 여야 협의로 정해져 왔는데 의장이 관행을 무시하고 해임건의안을 직권상정할 뜻을 밝힌 것은 유감”이라고 반발했다. 의장이 야당의 의견만 받아들여 직권상정을 하고 여당이 반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강 의장은 본회의 안건에 해임건의안을 포함시켰고, 결국 대정부질문이 끝난 후 오후 9시 20분경 상정을 선언했다. 표결에 앞서 본회의장 안에 있던 70여 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은 직권상정의 부당함과 해임건의안 처리 반대를 내세우며 퇴장했다. 결국 회의장에 남은 민주당 124명, 통합진보당 11명, 무소속 3명의 의원만 투표했으나 의결정족수(151명) 미달로 무효가 됐다.
▼ “박지원 체포동의안 상정 명분쌓기냐” 민주도 당황 ▼

20일 오전 민주통합당이 김황식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우선 처리를 요구하며 국회 본회의 참석을 거부한 가운데 본회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한구 원내대표(오른쪽) 등 새누리당 지도부가 강창희 국회의장(앉은 이)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0일 오전 민주통합당이 김황식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우선 처리를 요구하며 국회 본회의 참석을 거부한 가운데 본회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한구 원내대표(오른쪽) 등 새누리당 지도부가 강창희 국회의장(앉은 이)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해임건의안이 폐기되자 새누리당 홍일표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민주당이 해임건의안을 낸 이유인) 한일 정보보호협정 논란에 대해서는 총리가 이미 대국민 사과를 했으므로 해임은 부당하다”며 표결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또 “해임건의안은 민주당이 박지원 원내대표의 검찰 소환에 쏠린 국민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물타기 수법으로 이뤄진 정치공세”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본회의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명패에는 친일파라는 접두어가 따라다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원식 원내대변인도 “(새누리당의) 매국적인 태도까지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날 강 의장의 갑작스러운 직권상정 결정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강 의장의 결정에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당황했다. 강 의장이 야당의 요구대로 직권상정을 한 만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새누리당이 요구하는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도 직권상정하기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해석이다. 또 앞으로 처리시한이 정해진 안건은 여야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시한 내 처리’라는 명분으로 직권상정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에서는 검찰이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제출할 경우 강 의장이 직권상정할 명분을 쌓으려 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총리 해임안#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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