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협정 밀실처리 외교라인 문책 불가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5일 03시 00분


“한일정보협정 재추진 위해 국회 설득할 명분 필요”
MB도 공감… 김성환-김태효 外1, 2명 추가 거론

기로에 선 ‘MB외교’ 수장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4일 국회를 방문해 박병석 국회부의장과 면담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김 장관은 박 부의장에게 한일 정보보호협정 처리 과정을 설명하며 “절차적인 문제에 있어서 잘못됐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기로에 선 ‘MB외교’ 수장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4일 국회를 방문해 박병석 국회부의장과 면담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다. 김 장관은 박 부의장에게 한일 정보보호협정 처리 과정을 설명하며 “절차적인 문제에 있어서 잘못됐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은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재추진하기 위해선 국무회의 비공개 처리로 ‘은폐’ 논란을 초래한 정부 핵심 관계자들에 대한 조속한 문책이 불가피하다고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책 대상으로는 이미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고 밝힌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협정 실무를 총괄한 김태효 대통령대외전략기획관과 함께 정부 고위 관계자 1, 2명이 추가로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4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협정의 비공개 처리에 따른 파문을 가라앉히고 추후 이를 다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 핵심 인사에 대한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형성됐고 대통령도 이에 공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장관과 김 기획관 등 누가 인책 대상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상징적인 인사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큰 이견은 없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2일 이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도대체 긴급 안건 상정은 누구의 발상이냐”고 질책한 직후부터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등 내부 조직과 인사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 왔다. 청와대는 이르면 6, 7일경 조사 결과와 함께 관련 조치를 발표할 계획이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앞으로 2, 3일 후 조사 결과가 나올 것이고 인사 조치 등 그에 따른 조치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변인은 정치권의 이 대통령 사과 요구에 대해선 “이미 국무총리가 하지 않았느냐. 그건 정치공세다”라고 잘라 말했다.

외교부와 국방부도 각각 자체 조사에 착수했으며 이번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 책임론’을 주장한 조병제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오후 김 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사의가 받아들여지면 이번 사태로 인책되는 첫 고위 당국자가 된다. 조 대변인은 1일 기자들과 만나 “협정 국무회의 비공개 처리는 청와대 의중이었다”고 말해 ‘책임 떠넘기기’ 논란을 빚었다.

청와대가 ‘인책 불가피’로 방향을 잡은 것은 그만큼 한일 정보보호협정 파문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1일부터 민정수석비서관실 등을 통해 이번 파문에 대한 각계 여론을 광범위하게 들은 결과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부정론이 압도적이었다. 별도의 보고서를 쓸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일방적이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새누리당까지 협정에 부정적이어서 국회를 설득하려면 책임자 문책을 통한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채널A 영상] 한일 정보보호협정 진실은?

▼ 협정 무산땐 레임덕 수렁… 靑 ‘읍참마속’으로 與 설득 나설듯 ▼

두문불출 김태효 한일 정보보호협정 비공개 처리 파문의 문책 대상으로 거론되는 김태효 대통령대외전략기획관. 동아일보DB
두문불출 김태효 한일 정보보호협정 비공개 처리 파문의 문책 대상으로 거론되는 김태효 대통령대외전략기획관. 동아일보DB
특히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상황에서 국익 차원에서 추진한 이 협정마저 무산될 경우 이명박 정부는 더욱 깊은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의 수렁에 빠져들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진상조사 후 구체적으로 누구를 문책할지를 놓고 깊이 고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번 사태의 키 플레이어인 김 장관과 김 기획관은 명실 공히 ‘MB 외교’의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 기획관은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소년 책사’로 통하며 MB의 외교 과외를 맡은 ‘창업공신’으로 정권 출범 이후 지금까지 청와대에서 대외정책을 주도해 왔다. 김 장관도 이 대통령의 깊은 신임 아래 현 정부 내내 승승장구해 왔다. 2008년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이 대통령의 러시아 순방을 수행한 김 장관이 격무 끝에 아랫입술이 짓물러 터지자 이를 본 이 대통령이 “몸 좀 챙겨 가면서 일하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책임론에 직면한 김 장관은 뒤늦게 사태 수습에 부심하고 있다. 김 장관은 4일 오전 국회를 찾아 이병석, 박병석 국회부의장에게 협정 처리 과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그는 박 부의장의 호된 질책을 받고 “절차적인 문제에서 잘못됐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국민의 이해를 얻고 더이상의 잘못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장관은 외교부로 돌아오는 길에 기자와 만나 “국회와의 협의를 계속하겠다”며 “다음 주쯤 국회 상임위원회가 열리면 거기서도 내가 설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9∼12일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 여부에 대해서는 “참석을 해야 하는데, 국회 협의 문제 때문에 일정이 조정될 수 있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ARF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일정이 겹칠 경우 캄보디아행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김 장관의 이런 행보에는 청와대가 외교부 실무자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책임을 물으려는 상황에서 직원들의 사기 문제와 내부적 혼란 수습의 필요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언론은 이날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국무회의에서 협정을 비공개 처리한 것은 외교부 조세영 동북아국장의 아이디어”라며 조 국장을 지목했다. 그러나 조 국장은 “제 책임이라고 한 것은 개인적으로나 조직 차원에서 변명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지, (비공개 처리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죄가 있다고 인정했다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고 부인했다.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히는 조 국장은 협정의 국무회의 처리를 앞두고 내부회의 과정에서 오히려 “이런 일을 비밀리에 처리하면 큰일 난다”고 지적했다고 한 당국자는 전했다.

당장 외교부 안팎에서는 “청와대가 부처 실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 당국자는 “결국 외교부가 책임을 지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냐. 이런 식이면 앞으로 누가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일하려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5월 말 열린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6월 말까지 협정 서명’ 방침을 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회의는 김 장관이 주재했으며 김 기획관도 이 회의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6월 말로 서명 시한을 정해 놓고 그에 맞춰 국내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시간에 쫓기다가 무리수를 둔 셈이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지난달 21일 국회를 방문해 여야 정책위 의장에게 이 사안을 설명하면서 6월 말 서명 방침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한일 정보협정#밀실처리#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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