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부산은 친노(친노무현)의 아성이었다. 21일 민주통합당 차기 당대표 선출을 위한 지역순회 부산 경선에서 친노그룹의 좌장인 이해찬 후보가 예상대로 1위를 차지하면서 전날 울산 경선에서 ‘충격의 4위’에 그쳤던 수모를 만회했다. 그러나 대표적인 비노(비노무현) 인사로 분류되는 김한길 후보가 만만찮은 득표로 2위를 기록하면서 승부는 한층 예측이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후보로서는 김 후보와의 차이가 불과 149표에 불과해 ‘절반의 승리’라는 지적도 있다. 22일 광주·전남 경선에서 웃는 사람이 경선 주도권을 쥘 것으로 전망된다.
가슴을 쓸어내린 이 후보 측은 애써 담담한 모습이다. 이번 승리를 계기로 다시 ‘이해찬 대세론’이 부활하길 기대하는 눈치다. 이 후보 측 김현 대변인은 “총선의 아쉬운 패배를 딛고 대선에서의 희망을 찾으려는 당원들의 뜻과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며 “정권교체의 진원지가 부산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 후보가 체면유지는 했지만, 김 후보의 득표력 또한 다시 확인된 만큼 ‘이해찬 대세론’이 되살아났다고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 후보 측은 열세지역인 부산에서 이 후보에게 크게 뒤지진 않은 만큼 수도권 등에서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는 분석이다. 김 후보는 “어려웠지만 선방했다”고 자평했다.
○ 이해찬 “김한길은 위선과 거짓에 찬 사람”
이날 8명의 후보는 합동연설회에서 일제히 ‘노무현 정신’을 강조했다. 부산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데다 노 전 대통령 서거 3주기(23일)를 앞두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김 두 후보 간 공방은 전날 울산 경선 때보다 한층 격렬했다. 김 후보는 “요즘 소위 ‘친노’라는 이름으로 정치를 하면서, 밀실에서 반칙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와의 역할 분담론을 내건 이 후보를 조준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호남이 원내대표, 충청도가 당대표를 하자고 한다”며 ‘이-박 연대 때리기’를 계속했다.
김 후보는 이 후보와 부산·경남 출신의 당내 대선주자인 문재인 상임고문과의 틈 벌리기를 꾀했다. 그는 “문 고문은 밀실담합(이-박 연대)의 피해자다. 밀실담합의 각본대로 대표가 결정되면 억울하지만 문 고문도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후보는 “제가 당대표가 된다면 공정성 논란도 없을 것이고, 문 고문이 비판받는 일도 없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발끈했다. 그는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면서 저와 함께할 동료들과 가슴에 맺히는 일 안 하겠다고 해서 참고 또 참았다”고 운을 뗀 뒤 “김 후보는 2007년 2월 ‘노무현의 실험은 끝났다’며 의원 23명을 끌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던 사람”이라고 김 후보의 과거를 거론하며 비난했다. 이어 “김 후보는 2008년 1월 정계은퇴를 하면서 ‘오만과 독선의 노무현 프레임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며 대선 패배 책임을 노 전 대통령 탓으로 돌린 사람”이라며 “위선과 거짓에 찬 사람이 정통 민주당의 대표가 돼서야 어떻게 우리가 국민 앞에 나설 수 있나”라고 비판을 계속했다.
이 후보 측 오종식 대변인은 전날 울산 경선에서 김 후보가 ‘이-박 연대로 인해 문 고문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주장을 편 데 대해 “이-박 연대 때문에 당의 지지율과 유력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와 상반된 것이다. 근거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적극 반박했다.
한편 김 후보는 이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통합진보당과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정치적 좌표와 위상이 같은 방향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 박지원 “안철수가 더 많은 지지 받으면 우리가 양보해야”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부산 경선 현장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박영선 의원(경남 창녕), 조국 교수(부산) 등 요즘 유명한 인물은 다 PK(부산·경남) 출신이다. 다음에는 PK 정권이 들어서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구·경북(TK) 출신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한 것이자 야권의 대선주자군인 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김두관 경남도지사 등이 모두 PK 출신이란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 위원장의 발언은 PK 대선주자인 문 고문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문 고문을 대선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는 이해찬 후보를 지원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논란이 될 수 있다. 또한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 상임고문 등 PK 출신이 아닌 당내 다른 대선주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박 위원장은 또 “치열한 경쟁을 통해 민주당 대선후보를 내세워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면서도 “안철수 원장이 더 많은 지지를 받는다면 우리가 양보해 어떻게든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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