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두고볼 수 없어” 박희태前비서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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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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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에 돈봉투 ‘고백의 글’…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했던 검찰진술 번복“책임있는 분이 권력으로 위기모면 모습 보고 결단”검찰 ‘300만원은 박희태가 직접 마련’ 진술 확보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 씨(사진)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박희태 캠프 ‘돈봉투’ 사건과 관련한 ‘윗선’의 실체에 대해 8일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고승덕 의원으로부터 300만 원을 돌려받은 뒤 이 사실을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보고했다고 밝혔다.

고 씨는 이날 오후 서울 모처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고백의 글’이라는 제목의 A4 1장짜리 글을 건네며 심경을 밝혔다. 본인의 지장이 찍힌 이 글에는 “세 번에 걸친 검찰 공개소환 외에 검찰 비공개조사를 통해 그동안의 진술을 번복하고 진실 그대로를 진술하였다는 점을 고백한다”고 썼다.

그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고 의원 측으로부터 300만 원을 돌려받은 뒤 그날 오후 김 수석을 직접 만나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씨는 그동안 검찰 조사에서 고 의원 측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돌려받은 300만 원은 내가 썼고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해 왔다. 이에 따라 김 수석의 검찰 소환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 수석은 ‘안병용 은평갑 당협위원장의 돈봉투 살포건’과 관련해서도 이를 공개한 구의원들로부터 돈을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돼 왔다.

고 씨가 동아일보에 전달한 ‘고백의 글’ 첫머리에는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썼다. 그는 “‘책임 있는 분’은 누구를 지칭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라고만 답했다. 다만 “그분이 처음에 고 의원에 대해 ‘일면식도 없다’고 거짓 해명을 하면서 여기까지 일이 이어졌다”고 말해 김 수석임을 시사했다. 돌려받은 300만 원의 용처에 대해서는 “조만간 밝히겠다”고 말했다.

[채널A 영상] “나는 판도라의 상자 여는 열쇠” 고명진 ‘고백의 글’

 
▼ “진실 감추려 시작된 거짓말, 들불처럼 번져” ▼

그는 글에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하루하루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이로 인해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허위진술을 강요받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윗선’의 압력에 따른 허위진술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 씨가 8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직접 건넨 ‘고백의 글’. 자신의 지장이 찍혀 있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 씨가 8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직접 건넨 ‘고백의 글’. 자신의 지장이 찍혀 있다.
그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가 바로 나라는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면서 “검찰은 이미 진실을 감추기에는 너무나 명백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고 밝혀 검찰 수사가 알려진 것보다 진척됐음도 시사했다.

고 씨는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나약함과 한때 모셨던 주인을 물어뜯은 배신자가 되어야 했던 죄책감은 내가 평생 치러야 할 죗값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복잡한 심경을 나타냈다. 또 “이번 일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다”며 “나의 첫 직장이자 12년 동안 일했던 국회를 떠나려 한다”고 썼다.

한편 검찰은 이날 전당대회 직전 고 의원실에 전달된 돈봉투 속 300만 원은 박 의장(당시 당 대표 후보)이 직접 마련해 선거캠프에 제공했다는 박 의장 측근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전당대회 직전 선거 판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지 대의원 확보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박 의장이 서둘러 돈을 마련해 캠프 재정을 총괄하던 조정만 국회의장 수석비서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한 물적 증거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박 의장으로부터 해명을 듣기 위해 소환조사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아직 조사 방식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9일 오후 2시 조 수석을 다시 소환해 박 의장으로부터 300만 원을 받은 구체적인 경위와 고 의원 외 박 의장이 돈봉투를 건네라고 지시한 또 다른 의원이 있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다.

또 검찰은 2008년 2월 박 의장 측이 라미드그룹에서 사건 수임료로 받았다는 1000만 원짜리 수표 10장 중 4장을 박 후보 캠프에서 재정·조직 업무를 담당했던 조 수석이 6월 말 현금화한 것으로 파악했다. 또 라미드그룹에서 사건을 수임한 박희태·이창훈 법률사무소 측에서 같은 해 6월 말 박 후보 캠프의 공식회계책임자였던 보좌관 함모 씨에게 1000만 원을 보낸 사실도 확인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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