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무용론 휩싸인 국정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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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민트’ 무너지고…‘정보 먹통’ 非전문가들 전횡

한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무용론에 휩싸이고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발생 51시간 만에, 그것도 북한이 예고한 ‘특별 방송’을 보고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만 놓고 보면 국정원의 정보력이 일반 시민들과 다를 게 없는 수준이다.

○ 여야, “원세훈 원장 그만둬야”


20일 긴급 소집된 국회 정보위원회, 국방위원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는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을 놓고 여야 모두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정보위에 참석했던 여야 의원들은 원 원장의 답변을 듣다 회의장을 뛰쳐나와 “국정원이 먹통이다” “정보력이 동맥경화 수준” “모르는 게 자랑이냐”며 답답해했다.

외통위에서도 국정원을 비롯한 대북 관련 부처의 정보력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원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은 “김 위원장 사망에 따른 상황 정리가 마무리되면 원 원장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대북 정보력 강화 차원에서라도 원 원장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이 아니라 잠자는 기관”(선진당 이회창 의원), “국정원이 숙박원이냐”(민주통합당 박주선 의원) 등의 비아냥거림도 쏟아졌다. 국방위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예전에는 ‘동네정보원’ 소리 듣더니 이번엔 가장 중요한 군사정보도 파악하지 못했다. 국정원과 국방부의 대북 관련 부서가 이번 일에 책임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1년에 1조 원 가까운 예산을 사용하고, 사용처도 대외비인 국정원이 이렇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까닭은 뭘까. 전문가들은 김대중 정부 출범 후 햇볕정책 추진으로 인적정보 자원인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를 축으로 한 대북 정보 시스템이 와해됐고, 이명박 정부 들어 서울시 공무원 출신인 원세훈 원장 등 정보 비(非)전문가들이 국정원을 이끈 데 따른 결과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첨단 전자장비를 통한 정보 수집 체계인 ‘시진트(Sigint·Signal intelligence)’에 주로 의존한 데 따른 지적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김대중 정부 때 대북 휴민트가 무너져 복원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관진 장관도 국방위에서 “현재 국방정보감시 체제만으로 김정일의 사망을 아는 것은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보능력을 키우고 확장해야겠다는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대북 정보력 한계를 토로했다.

국정원 내 인적 난맥상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보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은 기자와 만나 “국정원 고위 간부들을 만나 보면 ‘무슨 일을 하려 해도 도무지 하부 조직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더라”고 전했다. 전직 국정원 간부들의 모임인 ‘국사모’ 회장인 송영인 전 국정원 제주도 부지부장은 전화통화에서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데도 대북 휴민트 체계 복원 같은 노력을 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 CIA도 몰랐다?


한국 정보당국은 물론이고 미국 중앙정보국(CIA), 중국 정보당국도 김 위원장 사망 사실을 발표 전까지 몰랐다는 분석도 나왔다. 19일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세 나라의 정보기관들이 김 위원장이 숨진 열차 주변에 몰려든 군인들이나, 당황한 북한 관리들의 전화통화 같은 단서조차 포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첩보원 침투나 정찰위성 감시가 쉽지 않은 북한의 폐쇄성에 기인하지만, 김 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정보계통상에 허점이 존재함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은 국가안전부와 공안,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등이 있다.

이 신문은 이어 한미 정보기관은 과거에도 우라늄농축시설 완공, 시리아 핵개발 협조 등 북한이 개입한 중대 움직임을 북한이 스스로 밝히거나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알려주기 전까지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
시진트(Sigint·Signal intelligence) ::


‘휴민트’는 영화 ‘007’의 제임스 본드처럼 사람이 활동해 정보를 수집하는 인적 정보를 뜻한다. 사람과 접촉해서 정보를 알아내기 때문에 상대의 내밀한 의도까지 파악할 수 있다. 반면에 인공위성, 정찰기, 이지스함 등 첨단 장비를 통한 전자 정보는 ‘시진트’라고 한다. 북한의 로켓 발사 정보 수집 등에는 시진트가 주로 활용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 확인 등에는 휴민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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