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vs 111… 국회 ‘성희롱’ 강용석 구하기

  • Array
  • 입력 2011년 9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134(제명 반대)vs111(제명 찬성)… 본회의서 제명안 부결방청객-기자 내쫓고… TV중계방송 막고… 출입문 걸어잠그고…

쫓겨나는 여성단체 회원들 국회는 31일 본회의를 열어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무소속 강용석 의원 제명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했다.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면서 국회 경위들이 방청석에 있던 여성단체 회원 등 방청객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 서울신문 제공
쫓겨나는 여성단체 회원들 국회는 31일 본회의를 열어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무소속 강용석 의원 제명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했다.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면서 국회 경위들이 방청석에 있던 여성단체 회원 등 방청객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 서울신문 제공
31일 오후 3시경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5번째 안건인 ‘국회의원 강용석 징계안’이라는 문구가 뜨자 국회 경위들이 바빠졌다. 취재 기자들과 방청객들은 모두 본회의장 밖으로 내몰렸다. 본회의장은 봉쇄됐다. 본회의 진행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국회 중계방송도 멈췄다.

회의가 비공개로 바뀌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발언대에 올랐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인에게) 돌로 치라’는 성경구절로 말문을 연 그는 “나는 강 의원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겠다. 이미 강 의원에게 비난의 못이 많이 박혔다. 이 정도 일로 제명한다면 우리 중에 남아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갔다. 일부 의원들은 발언이 끝나자 “잘했어” “살신성인했어”라며 호응했다. 이어 무기명 찬반 투표가 바로 실시됐다. 재석 의원 259명 중 △찬성 111표 △반대 134표 △기권 6표 △무효 8표. 한나라당 소속이던 지난해 7월 여대생 성희롱 발언 파문을 일으킨 강 의원(현재 무소속)에 대한 제명안은 이렇게 부결됐다. 제명안이 통과되려면 헌법을 개정할 때처럼 재적의원(현재 297명) 3분의 2(198명) 이상의 찬성표가 나와야 하지만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23표 많았다.  
▼ ‘면죄부 국회’ 부끄러운건 알아서… ▼

헌정 사상 처음으로 윤리문제로 국회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였던 강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다. 지금까지 제명 처분을 받은 국회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신민당 총재 시절인 1979년 의원직을 박탈당했지만 이는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다 생긴 일로 강 의원 사건과는 다르다.

이날 방청석에는 여성단체 관계자들도 상당수 나와 있었다. 강 의원 제명안을 통과시키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비공개 방침에 따라 본회의장 밖으로 내몰린 이들은 개표 결과가 나오자 “오늘 결정은 국회의 인권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국회는 국회법 158조에 근거해 회의를 비공개로 바꿨다. 이 조항에는 ‘징계에 관한 회의는 공개하지 아니한다. 다만 본회의의 의결이 있을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징계안 처리는 비공개가 원칙이고 공개가 예외라는 얘기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 때도 모든 상황을 실시간 중계한 국회가 한 국회의원의 징계안을 꽁꽁 감춘 것은 ‘가재는 게 편’이라는 반응을 낳기에 충분했다.

제명안 부결 후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사회 지도층에 만연한 성희롱과 여성 비하, 차별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요구하는 국민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강 의원 제명안 처리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야는 당초 6월 국회에서 제명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한나라당이 8월 임시국회로 미루자고 요청하자 민주당도 수용했다. 민주당은 이번 표결을 앞두고 찬성 당론을 정하지 않았다.

강용석 의원
강용석 의원
제명안이 부결되자 여야는 곧바로 30일간 강 의원의 국회 출석을 정지하는 내용의 징계안을 다시 본회의에 올렸다. 제명안 부결을 미리 예상해 그 아래 수위의 징계안을 미리 준비해놓은 것이었다. 30일 출석정지 징계안은 재석의원 186명 중 찬성 158표, 반대 28표로 처리됐다. 출석정지안은 제명안과 달리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된다.

결국 국회는 강 의원에 대해 ‘퇴학 대신 1개월 유기정학’ 처분을 내린 셈이다. 강 의원은 30일 출석정지 처분을 받은 헌정 사상 4번째 국회의원이 됐다. 앞서 출석정지 처분을 받은 의원 3명은 2대 권태욱 김정식 의원, 3대 박재홍 의원으로, 강 의원에 대한 출석 정지 징계는 50여 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강 의원에 대한 사법처리는 아직 진행 중이다. 강 의원은 지난해 7월 16일 연세대 토론동아리 학생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나운서 지망 여대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이를 보도한 기자를 무고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문닫는 국회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무소속 강용석 의원 제명안에 대한 표결이 실시되기 전 국회 경위들이 방청석 출입문을 닫고 있다. 비공개로 진행된 표결 결과 재석의원
259명 중 제명안 찬성은 111표에 그쳤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문닫는 국회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무소속 강용석 의원 제명안에 대한 표결이 실시되기 전 국회 경위들이 방청석 출입문을 닫고 있다. 비공개로 진행된 표결 결과 재석의원 259명 중 제명안 찬성은 111표에 그쳤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여야는 강 의원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동료 의원 감싸기와 여론 눈치보기를 반복했다. 지난해 7월 21일 발의된 강 의원 징계안은 10개월 만인 올해 5월 30일 국회 윤리특위를 통과했다. 윤리특위를 통과하기까지 윤리특위 전체회의와 징계심사소위가 여러 차례 무산됐다. 동료의원 감싸기가 아니냐는 여론의 질책이 쏟아지자 윤리특위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징계안을 의결했지만 제명안은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한참 뜸을 들여 강 의원 징계안이 발의된 지 1년 만에 본회의에 상정되는가 싶더니 역시 예상대로 부결됐다.

그렇다면 동료의원들은 진정 강 의원을 구한 것일까. 강 의원은 우여곡절 끝에 의원직을 유지하게 됐지만 더 큰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강 의원을 여러 차례 못질한 것은 여론이 아니라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시간을 끌어온 동료의원들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