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정상회의 개회식 장소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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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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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까지 오세요”… “센다이까지만”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60km 떨어진 곳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세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게 될까. 정부가 21, 22일 제4회 한중일 정상회의를 후쿠시마 현 청사에서 개회한 뒤 도쿄에서 본회의를 열자는 일본의 제안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지난주 후반 이런 구상을 외교 채널로 한국과 중국에 전달했다. 한국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유럽 3개국 순방이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위험 지역’에 보낼 수 없다는 이유로 부정적 의사를 밝혔다.

방한 중인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11일 장원삼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과 만나 후쿠시마 개최 문제에 대한 중국과의 협의 결과를 소개하고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내에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행사 장소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흔쾌히 돕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0.1%의 위험요인도 차단해야 할 상대국 정상을 ‘위험 지역’으로 초대한 것은 외교 관례상 맞지 않는다”는 반론도 나온다.

일본 측은 원전에서 30km 반경을 피난구역으로 선포했고, 30∼50km에 있는 일부 지역도 토양 및 대기 방사선량에 따라 피난을 권고했다. 한국과 미국은 이 범위를 80km로 넓게 잡고 있다. 따라서 후쿠시마 현 청사는 한국 정부가 지정한 대피권고 지역에 위치한다.

일본 측은 “후쿠시마 시의 10일 방사선량은 시간당 1.55mSv(마이크로시버트)로 다른 지역보다 높기는 하지만 인체에 영향이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11일 후쿠시마를 방문한 것을 근거로 위험성이 없다고 한국과 중국 정부를 설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측의 갑작스러운 제안은 한중 정상의 ‘민간 외교’ 일정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중국은 이 대통령과 원 총리가 지진해일(쓰나미) 피해를 본 센다이를 방문해 피해 주민을 위로하는 계획을 일본 측과 협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도 센다이를 방문해 어린이들에게 곰 인형을 선물하면서 차분한 친선외교 일정을 소화했다.

일본의 제안은 이왕 센다이와 도쿄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중간에 위치한 후쿠시마를 들러서 센다이→후쿠시마→도쿄의 동선을 택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원전 사고 복구 과정의 소극적 리더십으로 정치적 궁지에 몰렸고, 일본의 원전 기술과 식료품도 해외 시장에서 안전성을 의심받고 있다. 일본으로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일석이조의 카드인 셈이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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