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이익 공유제’ 정운찬의 변신에 여권 민감한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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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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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슈 주도로 몸값 키우기?

정운찬 전 총리
정운찬 전 총리
‘세종시 총리에서 동반성장의 전도사로.’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변신이 화제다. 최근 동반성장위원장 자격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초과이익 공유제(Profit Sharing)’를 주창하고 나서며 여론의 중심에 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기업 초과 이윤의 일부를 협력업체들의 기술개발 등으로 쓸 수 있도록 하자는 초과이익 공유제는 파격적인 발상이다.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흥미를 끄는 이유는 “반(反)시장적이다, 아니다”의 차원을 넘어 이명박 정부의 국정기조와 닿아 있는 데다 여권 내부의 묘한 권력관계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이슈다. 중소기업인들이 즐겨 쓰는 건배사가 ‘9988을 위하여’라고 한다. 대한민국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근로자 88%가 중소기업에 몸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나 여권으로선 수적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중소기업 근로자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가 이번 논란이 불거진 이래 “동반성장위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이다. 현재 입장을 말할 단계가 아니다”(김희정 대변인)라며 공식적으로 유보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한편에선 “반시장적 분배정책이자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고 비판하고 다른 한편에선 “중소기업 및 근로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게 할 획기적인 구상”이라고 옹호한다.

청와대 내에서도 경제수석실은 시장경제 원리를 훼손하는 발상이라는 쪽인 반면 정무수석실은 “정 전 총리가 못할 말을 한 것은 아니다”는 쪽에 더 가까운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한 청와대 참모는 일부 대기업의 성과급 돈잔치를 비판하면서 “법이나 제도로 강제하는 게 아니라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초과 이윤의 일부를 이윤 창출에 기여한 협력업체에 지원해 생산성 향상이나 기술개발에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뭐가 문제냐”고 말했다.

물론 청와대 참모들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쪽의 의견이 많긴 하다. 이 대통령은 초과이익 공유제에 대한 얘기를 듣고 별다른 언급 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한나라당도 비슷한 분위기다. 홍준표 최고위원만 “급진 좌파적인 주장”이라며 대놓고 정 전 총리를 비판하는 형국일 뿐 다른 의원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정책위의 한 관계자는 “초과이익 공유제는 거의 좌파 수준의 정책으로 복지정책 중에서도 상당히 왼쪽에 가 있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생과 동반성장이라는 화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나라당과 정부가 이슈를 주도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는 나쁠 것이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경제학계에선 부정적인 견해가 더 많다.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이익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주주들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대 교수는 “시장경제원칙을 규정한 헌법 조항이 있는데 대표적인 시장경제주의자인 정 전 총리의 아이디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정 전 총리의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시각도 있다. 가까이는 4·27 재·보궐선거, 멀리는 내년 총선과 대선구도까지 겨냥해 치밀히 고안된 아이디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 서민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 최고위원이 극력 반대하고 나선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4·27 재·보선 후 당 지도부 입성 가능성이 거론되는 정 전 총리를 경계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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