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김 ‘BBK’ 털고 주가조작 혐의 벗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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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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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연 입국… “MB가 실소유주 주장은 거짓말” 진술, 왜?
“횡령 의혹 나와는 무관”… 국내외 소송 마무리 노린 듯

제17대 대통령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2007년 11월 20일 투자자문회사인 BBK의 김경준 대표(45)의 누나 에리카 김 씨(김미혜·47)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임을 보여주는 3장의 이면계약서 사본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계약서를 모두 합해 보면 이 후보가 이번 일(BBK 주가조작 및 횡령 사건)에 관계돼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면계약서 공개는 이뤄지지 않았고 동생 김경준 씨는 구속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8년형이 확정됐다.

그로부터 3년 3개월 후인 지난달 25일 김 씨가 돌연 입국했다. 그는 26, 27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 이동열)에 출석해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대통령’이라던 그간의 주장이 거짓말이었다고 털어놨다.

○ 에리카 김의 과거사 매듭짓기?

무엇이 김 씨의 태도를 180도 바꿔 놓았을까. 법조계에서는 김 씨의 태도 변화가 과거의 일을 매듭짓겠다는 새로운 생존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던 2007년 당시 김 씨 남매는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해 벌어들인 돈을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빼돌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5200여 명의 투자자에게 380억 원의 손해를 끼쳐 중형을 피하기 힘들었던 김 씨로서는 자신의 혐의를 벗으려면 이명박 후보에게 화살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유력 대선 후보를 물고 늘어지며 사기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채색하려한 김 씨의 시도는 대선 과정에서 성공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은 바뀌었다. 그 사이 대법원이 동생 김경준 씨에게 유죄 확정 판결을 내리면서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및 횡령 의혹은 뒤집을 수 없는 사실로 굳어졌다. 공범으로 지목된 김 씨에게는 ‘BBK는 이명박 대통령 소유’라는 주장을 번복하고 선처를 바라는 것이 최선의 선택카드가 된 것.

김 씨가 BBK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법정 형량이 무거운 주가조작, 횡령 혐의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부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재판이 끝나 더는 ‘잃을 것이 없는’ 동생 김경준 씨가 이미 책임을 떠안은 만큼 김 씨로서는 활로를 열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검찰 주변에서는 김 씨가 재기를 하기 위해서는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민형사 사건을 마무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은 씨와 처남 김재정 씨(지난해 2월 사망)가 대주주였던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다스는 미국 법원에 김 씨 남매를 상대로 투자금 반환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김 씨의 이번 귀국도 유리한 검찰 수사 결과를 받아내 민사소송에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옵셔널벤처스의 후신인 옵셔널캐피털 관계자는 “김 씨가 올해 1월 우리 회사 주주들이 미국 연방법원에 낸 민사소송에서 최종 패소해 371억 원을 물어내게 된 것도 귀국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 씨가 국내의 한 대형 유통업체에 물품을 납품하는 사업을 하기 위해 약혼자와 함께 입국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 에리카 김, 왜 하필 지금 입국했나

하지만 김 씨의 입국이 ‘그림 로비’ 의혹이 불거지자 2009년 3월 출국했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귀국과 하루 차이로 이어지자 권력층의 ‘보이지 않는 손’이 둘의 입국 시기를 조율한 것 아니냐는 기획입국설도 나돌고 있다. 한 전 청장이 2007년 대선 직전 대구지방국세청의 포스코 세무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서울 도곡동 땅은 이명박 후보 소유’라는 내용의 문건을 은폐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같은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28일 “전에는 그렇게 귀국을 종용해도 들어오지 않던 사람들이 요즘은 잘도 들어온다”며 “정권의 마무리 작업으로 어차피 터질 것을 막아보려는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 씨가 굳이 형사처벌 위험을 무릅쓰고 입국한 것은 현 정부 임기 내 부담스러운 사건을 털어내자는 모종의 교감이 있었다는 추측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두 사람 모두 자진 귀국했다는 것. 특히 김 씨는 미국 현지에서 거액의 금융대출을 받으려고 소득을 부풀렸다가 2008년 2월 미국 법원으로부터 선고받은 3년의 보호관찰 기간이 이달로 끝나면서 귀국이 가능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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