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교육정책 3년’ 현장의 목소리]<下>교과부-진보교육감 ‘교육 불통’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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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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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감 어설픈 교육실험에 일선 학교-학부모만 ‘골병’

“교육가족 여러분, 새 학기를 앞두고 여러모로 분주하시겠지요…우리 교육계에서 논란이 돼 왔던 몇 가지 현안에 대해 저의 진솔한 의견을 말씀드려 보고 싶습니다.”

설동근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이 24일 진보교육감 6명에게 편지를 보냈다. ‘교육, 상생의 파트너십이 필요한 때입니다’라는 제목이었다. 그는 진보교육감과 대화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동아일보의 요청을 수락하고 A4용지 3장 분량의 글을 만들었다. ▶설동근 차관 편지 전문 보기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부산시교육감(3차례)과 시도교육감협의회장을 지낸 그라면 진보교육감들과도 소통이 가능할 것이란 게 취재진의 기대였다. 그는 지난해 차관으로 취임하면서 “진보교육감들과 절충점을 찾겠다”며 적극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답장은 한 통도 오지 않았다.

○ 대화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


“편지 제목과 내용이 달라 섭섭하고 이해 못하겠다는 말씀만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최승룡 강원도교육청 대변인이 전한 민병희 교육감의 말이다. 최 대변인은 “일부 교육감들에 의해 파행 운영되기도 했다는 표현이 있는데 교육감을 상생의 파트너로 보길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설 차관이 교원능력개발평가에 대해 “일부 교원단체와 교육감들의 반대로 파행 운영되기도 했다. 3월부터 전국적으로 동일한 형식 아래 전면 시행하게 됐다. 이제 더 이상 시행 여부를 놓고 소모적인 논쟁은 필요치 않다고 본다”고 한 데 대한 반응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측도 난감하다는 반응. 조신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은 “내용이 제목과 다르다. 공통분모를 찾아 나가자고 해야 하는데,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해버리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민선 교육감은 장관보다도 결코 낮지 않은데 왜 차관이 편지를 보냈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일 먼저 만든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측도 곤란하다는 뜻을 전했다. 조병래 경기도교육청 대변인은 “평준화 문제로 설 차관과 좋지 않다. (답변을) 안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과 장만채 전남도교육감 측도 마찬가지였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측은 처음에는 흔쾌히 응했으나 약속한 날이 되자 “어렵겠다”고 했다. 김재갑 광주시교육청 공보비서관은 “3월을 맞아 진보 진영에서도 ‘상생과 협력’을 주제로 공동 성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이후 계속된 ‘교과부 대(對) 진보교육감’ 갈등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진보교육감들은 취임 2주일 만에 정부와 엇갈리는 행보를 시작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를 ‘일제고사’라고 단정하고 시험을 보지 않아도 결석 처리하지 않거나 대체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에 대해 설 차관은 편지에서 “학업성취도평가는 교실 수업을 개선하고 지역 간 학력차를 파악하는 기초자료”라며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곽노현 교육감을 비롯한 진보교육감들은 간접체벌도 금지했다. 김상곤 교육감은 체벌금지는 물론이고 두발·복장 자유, 강제 야간자율학습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다. 학교들은 교육감의 지침에 따라 학칙을 모두 개정해야 했다.

그러나 교과부는 올 초 ‘학교문화 선진화 방안’을 통해 간접체벌을 허용하고 교육감의 학칙 인가권을 폐지했다.

무상급식도 마찬가지. 교과부는 “일부 시도교육청이 무상급식 추진을 위해 학교 신설비를 대폭 줄였다. 내년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교육청들은 “노골적인 무상급식 가로막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 교육 자치에 다른 시각


교과부와 진보교육감의 마찰이 이어지자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지난해 10월 “민선 교육감이 시도지사와 다른 정책이나 노선을 내세워 교육 수요자인 주민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시도지사와 노선이 다른 교육감을 불편해하면서 나온 성명서였다.

갈등의 원인은 교육 자치를 달리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교과부는 교육정책이 전국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되기를 원한다. 이에 따라 교원평가 대통령령 개정안이나 학교문화 선진화 방안을 내놓으면 진보교육감들은 “교육 자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교원단체 간에도 엇갈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25일 성명서에서 “진보교육감 당선은 이명박 정부의 경쟁 만능과 승자독식의 교육 현실에 염증을 느낀 국민의 선택”이라며 “이 정부는 진보교육감과 상생하면서 우리 교육의 근본적 변화를 모색하기보다 교육감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통제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진정한 교육 자치는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요즘 학교는 진보교육감과 교과부의 서로 다른 정책으로 샌드위치 신세”라며 “교과부는 상명하달식 생각을 버리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고, 진보교육감은 교육 자치가 국가적 통일 기준을 무시해도 되는 게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측이 접점을 찾을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진보교육감은 정치 이념과 보편적인 교육 가치를 혼동하면 안 된다. 교육전문가와 학생, 학부모 등 교육 주체의 의견에 귀 기울이되 무엇보다 교육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과부에 대해서는 “이제 정부가 중앙 통제하는 시대는 지났다. 교육감에게 법적 자치권이 부여된 만큼 유연하게 의견 조정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매모호한 권한을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 교원평가 등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 어디까지가 교과부 권한이고 어디부터가 교육감 권한인지 법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미숙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학사모) 대표는 “교육 당국에서 큰 틀을 주면 교육감은 그 안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교과부 정책이 학교 현장에서 모두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단 나온 정책은 시행해 보고 문제가 있다면 토론을 거쳐 변화시켜야지 교육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키지 않으면 학교 현장에 혼란만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난감한 교육현장 ▼
학생체벌-방과후 학교 등… 새학기 시작땐 또 갈등 예고


정부와 진보교육감의 갈등과 마찰은 여러 문제에서 드러났다. 학생 체벌, 학생인권조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고교 평준화, 자율형사립고, 방과후 학교…. 양측이 충돌할 때마다 난감해하고 혼란을 느끼는 건 일선 교육현장이다.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가 대표적이다. 서울과 강원, 전북 지역의 학교는 완전히 다른 내용의 공문을 받으면서 혼란을 겪었다. 교육청이 대체 프로그램을 실시하라고 지시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초중등교육법 위반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최근 교과부는 학업성취도 평가 향상도를 학교 성과급에 반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이 결과를 교장의 학교경영능력평가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이에 서울 A고 교장은 “교과부로부터 학교 성과급을 받으려면 학력향상 프로그램을 짜야 하는데 그럼 교육청 방침에 배치된다”고 말했다.

전북도교육청은 익산 남성고와 군산 중앙고의 자율고 지정을 놓고 법적 공방을 벌였다. 자율고가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간접체벌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교과부는 간접 체벌을 허용하고 교육감의 학칙 인가권을 폐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 마련하기로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경기 B고 교사는 “아직 간접체벌을 허용할 만한 학칙을 재정비할 수 없어 개학 뒤 학생 지도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사교육 경감 대책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방과후 학교도 마찰의 소지가 많다. 교과부는 참여율을 학교 성과급 평가에 반영하겠다며 적극적이지만 진보교육감들은 선행학습이나 마찬가지라며 강제적인 참여를 금지하고 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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