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L 이남에 적 경비정” 주포 불뿜자 50m 물기둥“5.6km 해상 적 잠수함” 4.6km 접근 청상어 발사
29일 연평도 남쪽 75km 해상에서 사격훈련 중인 해군 2함대 소속 을지문덕함의 127mm 함포가 불을 뿜고 있다. 을지문덕함은 이날 10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사진 제공 해군
“출항 준비. 오늘 3.5m의 파고와 강풍이 예상된다. 이상 당직사관.”
27일 오후 1시 반 짧고 굵은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곳곳으로 울려 퍼지면서 경기 평택항에 정박해 있던 3500t급 구축함 을지문덕함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으쌰∼.” 함수 갑판에선 장병 10여 명이 도크에 배를 묶어둔 어른 팔뚝 굵기의 밧줄을 풀어 끌어올리고, 좌우현에 배치된 승조원들은 적의 유도탄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기만탄을 장착했다.
각 기관의 출항 준비 보고를 들은 함장 정석균 대령으로부터 “출항!” 지시가 떨어지자 을지문덕함은 서서히 서해 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함교(갑판 맨 앞 한가운데에 높게 만든 지휘 공간)에는 함장을 비롯해 승조원 10여 명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승조원들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비로 함정의 위치를 3분마다 확인해 해도에 자와 컴퍼스로 이동 경로를 그려 넣었다.
을지문덕함은 오후 4시 반 해상경계 및 사격훈련 구역인 평택항 서쪽 81km, 연평도 남쪽 75km 해상에 도착했다. 함교에서 “총원 전투배치” 명령이 하달됐다. 함교의 장병들은 전투모를 벗고 구명조끼를 입은 뒤 철모를 착용했다. 함교 밖 장병들도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소총을 쥔 채 갑판에 정렬했다.
사격훈련은 적의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침투한 상황을 가정해 127mm 주포를 발사하는 것이었다. 사거리가 23km인 주포는 1분에 45발까지 발사할 수 있다. 오후 5시20분 함장의 “사격개시” 명령이 떨어지자 ‘쿵’ 하는 폭음과 함께 함교 앞 주포가 불을 뿜었다. 충격을 받은 함교가 흔들렸고 유리창은 덜덜거렸다. 포강을 떠난 포탄은 3, 4초 뒤 을지문덕함 서쪽으로 9km가량 떨어진 해상에 떨어져 약 50m 높이의 물기둥을 만들었다.
오후 8시 반, 대잠수함 훈련이 시작되면서 을지문덕함은 다시 부산해졌다.
함교 밑에 있는 음탐실은 각종 레이더를 통해 영해를 침범한 적 잠수함을 찾아내는 곳이다. 9.9m²(3평) 남짓한 어두운 공간에선 간간이 나타나는 모니터 속의 녹색 점과 선만 번쩍거렸다. 을지문덕함은 20km 떨어진 잠수함도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이윽고 오른쪽으로 5.6km 떨어진 해상에서 적 잠수함이 식별됐다. 을지문덕함은 적 잠수함이 4.6km까지 접근하기를 기다렸다가 경어뢰인 청상어를 발사했다.
오후 9시, 장병 대부분이 휴식에 들어갔지만 함교 좌우 갑판에 배치된 견시병들은 목에 쌍안경을 걸고 전방을 주시했다.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함교를 비롯해 수면 위 함정의 모든 불빛을 차단했기 때문에 칠흑처럼 깜깜했다. 귓불을 찢는 듯한 찬바람이 몰아쳐 다리가 오그라들고 손은 저절로 점퍼 안으로 들어갔다. 견시병들의 교대 주기는 4시간. 입대 3개월째인 견시병 한새울 이병은 “춥긴 하지만 눈비가 오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오후 10시, 필수인원만 남기고 대부분 침실로 이동했다. 3층 침대의 각 칸은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폭과 높이였다. 3.5m의 파고가 만들어내는 너울 때문에 마치 롤러코스터에 앉아있는 듯했다. 탑승 전 나눠준 멀미약을 먹었는데도 현기증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공보장교인 김형진 대위는 “승조원들이 한번 작전에 투입되면 이런 환경에서 보름 이상 생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둘째 날인 28일 오전 을지문덕함은 충남 태안반도 관장곶 서쪽 격렬비열도 해상까지 진출해 경계작전을 수행한 뒤 평택항으로 돌아왔다. 정 함장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승조원들의 긴장도가 높아지고 훈련 숙달 수준도 향상됐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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