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다음 달 초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칠 때까지 개헌 논의를 자제하기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개헌-4대강 특위의 ‘빅딜’ 제안 논란으로 촉발된 개헌 논의가 잠정적으로 잠복하는 분위기다.
○ 여권, 개헌 논의 잠정 중단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앙언론사 보도·편집국장단 초청 간담회가 끝난 뒤 브리핑에서 “(여야가 개헌-4대강 특위의) 빅딜을 추진한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다”라며 “세계를 향해 신발 끈을 매고 뛰자고 하는데 더는 논란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간담회에서 개헌 문제에 대해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개헌 논의 확산에 제동을 건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는 이날 빅딜 제안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빅딜 논의의 불씨가 살아 있는 이상 개헌론이 꿈틀댈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G20 정상회의를 통해서 국운 성장의 역사적 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길을 미리 보고 기회로 잡겠다고 생각해야 우리는 진짜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절호의 국운 상승 기회를 앞두고 정치권, 특히 여권이 개헌이라는 국내 정치 이슈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들렸다.
○ 이재오 “국가 중대사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이재오 특임장관은 이날 김해진 특임차관을 통해 “국제적 행사인 국가 중대사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며 “(개헌논의 재개는) G20 정상회의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필요하면 다시 논의하면 된다”고 말했다. 개헌 논의를 자제하라는 이 대통령의 ‘뜻’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은 이날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개헌 문제는 이미 17대 국회 때 (여야) 6당이 모여 합의도 했고, (현재) 국회의원 대다수는 대통령 권한이 너무 크니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내각제로 가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홍 최고위원은 “대통령과의 교감하에 (개헌을 추진)한다면 오히려 역풍이 불 것”이라며 “대통령의 의중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대통령은 개헌 문제는 국회나 정치권에 맡기고 국정에 전념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이 장관과 홍 최고위원의 발언을 종합하면 G20 회의 이후 개헌 논의의 불씨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청와대는 전면에서 물러서고 국회를 중심으로 여야가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모양새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 야권에 불똥 튄 개헌 논의
여권의 개헌 논의가 확산되자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현행)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에만 충실해도 권력집중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권 주류가 ‘대통령에게 권력이 너무 집중돼 있다’며 내세운 개헌 명분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이어 손 대표는 “(여권이) 공연히 실정을 호도하고 정권 연장 술책으로 개헌을 한다면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대표가 전당대회 이후 개헌 논의에 분명한 의견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내 대표적 개헌론자였던 이낙연 사무총장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아직 어떤 회의체에서도 개헌 논의의 뚜껑도 열지 않았다”며 “여야 간은 물론이고 각 정당 내에서도 합의가 없다. 연내 개헌은 어려워졌고 18대 국회에서도 힘들다”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반면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SBS라디오에서 “(민주당) 지도부 몇 분은 (개헌에) 반대하지만 당내 의원 상당수는 찬성한다”며 “개헌특위를 구성한다고 해서 바로 개헌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의원총회 등 당내 토론을 통해 특위 구성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을 놓고 손 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