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경제정책 어떻게 변했나] ‘친서민 드라이브’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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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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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 지원… 中企 챙기기… 부처마다 “친서민 정책 찾아라”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8·15광복절 경축사에서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의 핵심가치로 ‘공정한 사회’를 제시하며 “패자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서민과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부처들은 이를 지난해 6월부터 이 대통령이 강조해온 친(親)서민 중도실용 정책기조를 한층 강화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서민 정책을 봇물 터지듯 쏟아내고 있다.

이르면 이달 말에 윤곽을 드러낼 ‘2010년 세제개편안’도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서민들의 세제 혜택을 늘리는 쪽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이며 서민 밀접 품목에 대한 담합조사도 강도 높게 추진할 계획이다. 반면 부유층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판단되는 정책들은 예외 없이 후순위로 미뤄졌다.

정책의 방점을 ‘서민’에 찍자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공무원들은 “분배를 강조했던 노무현 정권으로 되돌아간 것 같다”며 의아해했다. 당정청 간에 손발이 맞지 않는 정책이 나오기도 하고 포퓰리즘으로 비판받는 정책도 눈에 띈다.

○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친서민 정책

보건복지부는 최근 보육정책, 일자리 창출, 탈빈곤 자활정책, 복지사각지대 해소 등 4가지 부문에서 후속조치를 마련 중이다. 대표적으로 기초수급대상자의 기준이 되는 소득기준을 현행 243만 원(4인 가족 기준)에서 280만 원으로 올려 대상자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빈곤층 및 빈곤위험에 직면한 저소득층의 일자리 지원을 위한 ‘취업성공 패키지’ 정책을 강화하기로 했다. 취업성공 패키지 제도는 개인별 취업역량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통해 약 1년간 집중적으로 취업을 알선하는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천안함 사건 유족처럼 큰 위기를 겪은 사람들에게 육아 서비스나 상담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가족보듬사업’을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도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는 서민 계층을 위해 ‘공동육아나눔터’를 활성화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방과 후 거점 학교를 강화해 사교육비를 억제한다는 정책을 더 강도 높게 추진하기로 했다. 거점학교는 인근 학교 3, 4곳을 묶어 이 클러스터 학생들이 한 학교에 모여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다음 달까지 관계부처 합동으로 구조적 물가대책, 청년고용 종합대책, 대중소기업 상생대책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러한 친서민 정책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8월 발표한 세제개편안의 주요 개편 내용 중 첫 페이지를 장식한 것은 ‘서민 중산층 세제지원 확대’였다. 기획재정부는 폐업한 영세 개인사업자가 다시 사업을 시작하면 기존에 받지 못한 세금 500만 원을 면제해주고, 소규모 성실사업자에 대한 세금 납부 유예 기간을 현행 9개월에서 18개월로 늘린다는 내용을 가장 앞세워 발표했다.

○ 중소기업 지원정책도 덩달아 쏟아져

이 대통령이 서민을 강조한 이후 중소기업에 대한 직간접 혜택도 쏟아지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정부 지원 국책사업에 참가하는 기업들은 반드시 중소·중견기업을 다수 포함한 컨소시엄 형태로만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컨소시엄 간에 경쟁이 될 경우 중소·중견기업의 참여가 높은 쪽에 가산점을 주는 것이다. 실제 최근 중대형 2차 전지 개발 관련 국책과제에서 기술력이 좀 더 높다는 평가를 받는 LG화학 컨소시엄을 제치고 삼성SDI 컨소시엄이 선정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LG화학은 삼성SDI에 비해 중소기업 참여가 부족해 총점수에서 밀렸다.

행정안전부는 영세 소상공인과 소기업에 대해 지방세 세무조사를 3년간 유예해줄 방침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도급 문제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납품단가 인하의 정당성을 대기업이 입증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대·중소기업 하도급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상당수 경제학자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오히려 구조조정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중소기업 구조조정’은 쉽지 않은 숙제다. 경제 부처에서도 ‘퍼주기’식의 중소기업 정책이 구조조정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놓긴 했지만 친서민 정책 기조에 묻혀버린 상태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집권 초기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쳤던 이 대통령이 6·2지방선거 패배 후유증으로 서민과 중소기업에 집중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이는 전통적인 지지층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 정책 엇박자로 불확실성 커져

서민을 국정 키워드로 강조하다 보니 부유층에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정책은 하나 둘 미뤄지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해 말 조세소위를 열어 법인세 과세표준(세금부과 기준금액) 2억 원 초과 구간의 세율을 22%에서 20%로 인하하기로 한 정부안을 2년간 유예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재정건전성 악화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기업에 지나친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세금 감면을 전제로 투자비를 따지던 기업들은 계산을 원점에서 다시 해야 하는 지경에 빠지게 됐다.

종합부동산세, 다주택자 중과 등 정부가 바로잡겠다고 밝힌 세제들도 ‘부자감세’라는 비판 때문에 개정 작업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MB노믹스의 핵심이었던 감세정책에 제동이 걸리면서 MB노믹스의 정체성도 도전받고 있다.

정책들 간에 서로 충돌이 일어나거나 당정청 간에 엇박자를 내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공기업의 청년 인재 고용이 청와대와 정부가 엇박자를 보인 대표적인 사례다. 이 대통령은 9일 라디오 및 인터넷 연설에서 “공기업부터 유능한 청년 인재들을 더 많이 고용하는 방안도 현재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재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선진화 대책과 충돌한다. 재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 선진화를 추진하면서 공기업의 정원을 10% 이상 줄였는데 청년을 더 뽑으라고 하면 앞뒤가 맞지 않게 됐다”며 “대통령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중”이라고 했다.

정부 공무원이 정책의 갈피를 잡지 못하면 시장은 더 큰 혼란에 빠진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부 환경이 바뀌면서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뀔 수는 있지만 과거 정책을 뒤집어서는 안 된다”며 “그렇게 되면 기업이 그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불확실성을 정부가 조장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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