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급 23명 인사]정무와 멀어진 朴…정-남-정 11일 ‘압박회동’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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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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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사찰 배후 의혹’ 거취싸고 긴박했던 여권

친이소장파 “반드시 교체” 요구
긴급회동 이후 유임 분위기 급변

결국 지경부로 이동시켜 ‘절충’
“실세의 건재 확인된 것” 시각도
권력투쟁 갈등 해소는 미지수

13일 차관 인사에서 지식경제부 2차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은 승진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차관급에서 정식 차관이 됐으니까…”라고 말을 흐렸다. 정부 직제상으로는 ‘영전’이지만 자신의 거취를 놓고 설왕설래가 많았다는 점에서 복잡한 속내가 읽힌다.

○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진 막전막후

박 차장의 교체 여부는 이번 인사의 최대 관심사였다. 본인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영포목우회(영일 포항 출신 공직자모임)’ 논란,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 등과 관련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박 차장을 인사전횡과 권력사유화의 ‘주역’으로 공격했던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위원 등 친이(친이명박)계 소장파 그룹이 박 차장 교체를 압박하고 나서면서 여권 내 ‘권력투쟁’이 어떻게 결론 날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8·8개각 후 박 차장 거취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던 11일 오후. 정 최고위원과 남경필 의원, 미국에서 막 귀국한 정태근 의원은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만나 박 차장 퇴진 관철에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차관급 인사에서 지식경제부 제2차관에 내정된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 김동주 기자
13일 차관급 인사에서 지식경제부 제2차관에 내정된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 김동주 기자
다음 날 민간인 사찰에 대한 검찰 조사에서 박 차장 관련성이 드러나지 않고 박 차장이 유임될 기미를 보이자 정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에서, 남 의원과 정 의원은 개인 성명 등을 통해 민간인 정치인 불법사찰을 적당히 덮어서는 안 된다며 일제히 포문을 연 것은 이런 사전 역할분담의 결과였다.

정 의원은 “권력 사유화의 유혹에 빠져든 소수세력이 무리해서 확대한 자신들의 권력을 지역적 인맥을 바탕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정을 농단하고 반인권적인 불법행위를 자행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과 더불어 친이계 일부 소장파 의원은 청와대 요로에 박 차장 교체를 강력히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를 비롯해 박 차장을 옹호하는 그룹도 “확실한 인사 개입 물증이나 사찰 배후 의혹이 나왔으면 모르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일만 열심히 했는데 왜 물러나야 하느냐. 이런 식이면 누가 대통령에게 충성을 하겠느냐”고 맞섰다.

그 사이 박 차장 거취에 대한 여권 핵심 관계자들의 얘기는 시시각각 바뀌었다. 12일 낮엔 유임설이 흘러 다니더니 저녁에는 유임과 교체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정식 취임한 뒤 2차 인사 때 다른 자리로 옮길 것이라는 관측과 더불어 지경부 차관 이동설이 포착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 ‘권력게임의 끝인가, 또 다른 시작인가?’

이 대통령은 고심 끝에 박 차장을 자원외교의 업무 연속성이 있고 ‘정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지경부 차관으로 이동시키는 ‘절충안’을 제시하며 양측에 자중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향후 이들의 갈등이 잠복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박 차장의 지경부 이동에 대해 소장파 그룹의 한 인사는 “우리의 요구가 절반 정도 관철된 것으로 이 대통령이 내놓은 일종의 타협안”이라고 반응했다. 정태근 의원은 “정무적 활동이 불가능한 곳으로 배치한 고심을 읽을 수 있으나 여러모로 걱정되는 바가 많다. 불법사찰의 몸통을 밝혀내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세’ 박 차장의 건재가 확인된 인사라는 시각도 있다. 선진국민연대 출신인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은 “박 차장이 검찰 수사에서 불법사찰에 관련됐다는 증거가 안 나온 만큼 사실상의 영전인 이번 인사로 박 차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박 차장은 일단 몸을 낮췄다.

그는 총리실 기자들과 만나 “에너지 자원 분야에서 본격적인 성과를 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아프리카나 아시아 일부 지역, 중남미 쪽을 상대로 자원외교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불법사찰의 배후 논란에 대해 “세상에 진실이 둘일 수 없다. 많은 오해는 시간이 가면 밝혀질 것으로 본다”며 입을 꽉 다물었다. 한편 청와대는 박 차장 인사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묻는 질문에 “개별 차관 인사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뒤늦게 “국무차장 시절 해 왔던 아프리카 자원외교에 대한 일을 이어가 지경부 2차관으로서 자원분야 업무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한다”는 공식 코멘트를 내놨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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