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가 “北도 아닌 한국단체가 왜 이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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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팎 ‘황당’
“국내정치 아닌 외교안보문제 NGO가 발목잡기 드문 일”

정부 는 ‘격앙’
“北제재 설득 결정적 순간에 이적행위나 다름없는 행위”

북한은 ‘희색’?
南 이어 안보리서 입장 설명…中-러 제재 반대 빌미 줄수도

한국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를 이끌어내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의 시민단체가 찬물을 끼얹었다.

참여연대가 정부의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며 천안함 사건 논의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서한을 유엔안보리 15개 이사국에 보낸 것이다.

안보리이사국 등 유엔 외교가 안팎에서는 “북한을 제재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북한도 아닌, 한국의 시민단체가 반대하고 나서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한 반응이다. 한국 내부에서도 “국내 이슈도 아닌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시민단체가 국제사회에서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이적행위’와 다름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난감한 한국 유엔대표부

유엔 안보리를 통한 북한 제재를 추진해온 한국 유엔대표부는 참여연대가 안보리에 서한을 보낸 사실에 당혹해하고 있다. 정부가 민군 합동조사단까지 유엔본부에 보내 안보리 이사국들을 설득하려는 마당에 국내 시민단체가 반대 목소리를 내는 돌발 악재가 터져 나왔기 때문. 그동안 유엔대표부는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해 안보리 15개 이사국을 상대로 북한 제재의 필요성을 설득해왔다.

이란에 대한 추가제재 결의안 문제에 집중해왔던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은 9일(현지 시간) 이란에 대한 결의안을 처리하면서 천안함 사건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은 14일 오후(현지 시간) 유엔본부에서 안보리 이사국들에 천안함 조사 결과를 브리핑할 예정이었다. 이런 결정적 시기에 참여연대가 안보리에 서한을 보내 한국 정부의 노력에 시민단체가 발목을 잡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국 유엔대표부 관계자는 “안보리 이사국들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도 어려운 상황에 이런 일까지 벌어져 국제사회가 한국을 어떻게 볼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엔 외교가에서는 “국내 정치적 문제도 아니고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 비정부기구(NGO)가 자국 정부의 주장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라며 “도대체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 북한도 참여연대 서한 들고 나올 듯

북한 유엔대표부는 14일 한국 민군 합조단의 브리핑이 끝난 뒤 바로 안보리에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할 예정이다. 이때 참여연대 서한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유엔대표부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시민단체가 자국 정부의 조사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으니 (북한이) 오죽 반가운 일이겠느냐”고 말했다.

또 참여연대 서한은 북한 제재에 소극적인 중국 러시아에도 반대 목소리를 높일 결정적 빌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해 자체 조사를 벌인 러시아가 관련 결과 보고서를 다음 달 최종적으로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러시아의 발표가 나올 때까지 최종 결론이 유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정부 “이적행위나 마찬가지”

한국 정부는 참여연대의 서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정부 당국자는 “국제사회에 한목소리로 대북 규탄에 나서달라고 촉구하고 있는 마당에 국내 시민단체가 유엔을 상대로 한국 정부의 말을 믿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이적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북한은 남측이 국내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조사 결과를 들고 나왔다고 선전전을 펼 것이 뻔하다”며 “국내 분열상이 외교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라며 “국제 전문조사 인력까지 함께한 과학적 객관적 조사를 통해 결론이 났고 이미 50여 개국에서 신뢰를 보냈다. 도대체 이 시점에 무슨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인지 정말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선 외교부 대변인도 내외신 정례브리핑에서 “참여연대의 안보리 의장 앞 서한 발송은 정부가 기울이는 외교 노력을 저해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스러운 행동”이라며 “중차대한 국가안보 사안인 천안함 문제를 국제사회가 다루는 상황에서 국민의 일치되고 단합된 모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북한이 별도로 안보리 이사국에 설명회를 갖는 것에 대해 “진실이 모든 것을 말한다는 믿음 아래 의연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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