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잠긴 의원들 세종시 수정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2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이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제 기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한나라당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계가 22일 처음 난상토론을 벌인 의원총회를 지켜본 한 의원의 총평이다. 바깥 날씨는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냉랭한 기운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2시 국회 예산결산위윈회 회의장에서 시작된 의총엔 소속 의원 169명 중 146명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이 중 40명이 발언을 신청해 23명이 발언을 했다. 시간만 4시간 넘게 걸렸다. 이날 발언을 하지 못한 의원들은 23일 의총에서 계속 발언을 하기로 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26일까지 매일 의총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주는 사실상 ‘세종시 의총 주간’인 셈이다.》
회의 비공개 통보에 친박 “뭐가 무섭나” 고성 친이-친박 팽팽한 설전… 일각 ‘중진모임’ 제안 한선교 “박근혜 왜 때리나” 친이의원 비난도
의총 초반에 양 진영은 회의 공개 여부를 놓고 서로 고성을 주고받으며 신경전을 펼쳤다. 이후 친이-친박계 의원들은 세종시 원안-수정안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앞으로 이어질 세종시 의총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의총에 불참했지만 측근들로부터 회의 상황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공개 여부 놓고 거수투표
이날 사회를 맡은 원희목 원내부대표가 “정몽준 대표의 발언 후 비공개로 토론을 진행하겠다”고 말하자 친박계 조원진 의원이 “누가 비공개로 한다고 했느냐. 공개로 하자”고 항의했다. 이어 친박계 한선교 이정현 의원 등이 차례로 나서 “뭐가 무서워 공개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회의장은 술렁였다. 통상 의총의 공개 여부는 원내대표단이 정하지만 친박계 의원들은 원내대표단의 비공개 결정을 반박하고 나섰다.
안 원내대표는 “일단 오늘 의총은 비공개로 진행한 뒤 회의의 공개 여부까지를 다시 논의하자”고 수습을 시도했다. 결국 의원들의 거수투표 끝에 의총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 친이-친박, 팽팽한 의견차만 재확인
친이계 의원들은 수정안의 당위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춘식 의원은 “(독일) 통일 과정에서 본을 비롯한 주변 도시의 반대 때문에 베를린으로 합쳐지지 못한 채 6개 부처가 본에 남아 있어 비효율과 낭비가 엄청나다”며 “수정안 반대 입장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영우 의원은 “세종시 문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대선에서 재미를 봤다’고 할 정도로 정치적 계산에서 출발한 것”이라면서 “잘못됐는데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으로는 (일이) 잘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진수희 의원은 지난해 7월 이 대통령과의 독대 사실을 전하면서 “이 대통령은 하루에도 12번씩 다시 생각했는데 임기 중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그 문제(세종시의 문제점)를 알면서도 덮어놓는 것은 대통령 양심상 그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 소개했다.
이에 맞서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행정부처가 분산된 나라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며 “선거 때마다 약속한 것을 갑자기 당정청 협의 결과로 바꾸는 것은 소속 의원 169명을 초라하게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친박계 이종혁 의원은 “양치기 정부가 되지 말자”고 꼬집었고, 이진복 의원은 “오늘 ‘한나라당은 거짓말당’이라는 피켓을 만들어 들고 오려 했는데 창피해서 못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유재중 의원은 “약속을 번복하면 국가 신뢰지수가 떨어진다”며 “세종시 원안의 비효율이 수도권의 비효율인지, 국가의 비효율인지 따져봐야 한다. 수도권은 기득권을 버리고 다른 것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제3의 길’ 제안 속출
몇몇 의원은 ‘제3의 길’을 제안했다. 충남 출신인 정진석 의원은 세종시 문제에 대해 “2012년 대선까지 결정을 유보하자”는 의견을 냈다. 정 의원은 “내가 내놓은 ‘유보론’은 (세종시 문제는) 2012년(대선)에 가서 정리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이라며 “그때 결론 내면 된다”고 주장했다.
중립 성향의 이주영 의원과 조전혁 의원은 ‘행정부처 이전’이 아닌 ‘수도 이전’을 고려해 보자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개헌 논의와 발맞춰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수도 이전까지 포함해 모든 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 의원은 “원안 대 수정안 토론은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어서 두 안을 다 덮을 수 있는 프레임으로 바꿔야 한다”며 “프레임에 한정하면 나는 친이도 친박도 아니고 친노(친노무현)가 되고 싶다. 일단 원안대로 추진하다가 개헌을 논의할 때 수도 이전도 함께 토론하자”고 주장했다. 남경필 의원도 조 의원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했다.
한편 이주영 의원과 친이계 김효재 의원은 친이계 2명, 친박계 2명, 중립의원 2명 등 6인 중진모임을 만들어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회동 등 다양한 해법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 ‘막말 시비’ 논란
친박계 한선교 의원은 최근 친이계 진수희 의원이 11일 당 소속 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 도중 몇몇 기자에게 한 것으로 알려진 발언을 문제 삼았다. 당시 진 의원은 한나라당의 분당 가능성에 대해 “(부부끼리) ‘이혼해’ 하다가도 ‘어느 × 좋으라고…(이혼하냐)’ 하지 않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 의원은 의총에서 “박 전 대표를 몰라서 그러는 거냐. 왜 박근혜 때리기를 하느냐. 차기에 가장 유력한 박근혜를 죽여서 뭘 얻으려 하느냐”며 진 의원의 연구소장직 사퇴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진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분당 가능성을 부부 관계에 빗대서 얘기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분당하면 외부 세력만 이득을 본다는 뜻이었지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친이계 당내 최대 모임인 ‘함께 내일로’는 이날 운영위 회의를 열어 다음 달 초까지 세종시 당론 변경을 위해 재적의원의 3분의 2(113표) 이상의 표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 직계인 정두언, 강승규, 김영우, 이춘식, 정태근 의원과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 안국포럼 출신 인사들도 이날 저녁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찬을 하면서 세종시 수정안 관철 결의를 다진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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