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인턴이 바라본 한국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0일 21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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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상대로 정책과 예산집행을 매섭게 추궁하고 감시하며 견제할 수 있는 한국 국회는 분명히 선진 국회입니다. 한국 국회의 장점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라도 '싸우는 국회'의 이미지는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봅니다."

국회에 등록된 유일한 외국인 인턴으로 민주당 송영길 의원실에서 5년째 일본 정계와의 교류 관련 업무를 보좌하고 있는 히사다 카즈타카(久田和孝·34·사진) 씨는 '격투기 국회' 난장판'이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가 붙은 대한민국 국회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평가한다.

"여(與)든 야(野)든 정부와 관료를 매섭게 추궁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늘 신선합니다.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만 해도 국회의 견제가 없다면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하겠지요. 저는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 여와 야가 수시로 충돌하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신사적으로 대립해야지 몸싸움으로 번져서는 안 되겠지요. 여야가 사사건건 몸싸움을 벌이다보니 한국 국회와 한국 정치는 평가절하되고 매도되는 측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언론 매체가 양복을 입고, 실내에서, 집단적으로 싸우는 사람들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도하면 '한국 국회일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입니다. 한국 국회의 많은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도 몸싸움은 근절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히사다 씨는 한국 국회에는 외국 의회가 '배울 만한' 제도가 많다고 했다. 그는 첫 번째로 국정감사를 꼽았다.

"일본은 민주당이 집권한 후 처음으로 의회가 정부의 예산 운용을 감사했습니다. 2주 간이었고 법적 구속력도 없었지만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의회가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국식 국감이 도입돼야 한다고 봅니다."

히사다 씨에게는 한국 국회의 입법 보좌 기능도 놀라운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1인당 유급 보좌진은 8명(4급 2명, 5급 1명, 6급 1명, 7급 1명, 9급 1명, 인턴 2명)이다. 하지만 일본은 의원 한 사람당 유급 보좌진은 비서 3명만 둘 수 있고, 의원 부인이 비서로 등재되는 일이 흔할 정도로 의원 보좌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다고 한다.

그는 "일본 의원들은 대부분 유급 비서 3명 중 1명은 지역에 둔다. 의원 입법을 하기 어려운 구조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원들은 관(官)이 만들어 각 의원실에 전달하는 법안을 검토하는 일에 주안점을 둔다. 수시로 연락하는 일본 의원, 보좌관들에게 한국 국회의 의원 입법 현황을 설명해주면 몹시 놀라워한다"고 말했다.

한국 국회의원들은 의원 1인당 평균 35명의 보좌진을 두고 있는 미국 상원의 입법 보좌 기능을 들어 끊임없이 입법기능 확충을 요구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사나 의회의 규모, 나라의 크기 등을 생각해볼 때 한국은 미국보다는 일본과 유사점이 많고 그래서 한국 국회는 제도적으로 상당히 앞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히사다 씨는 사실 4분의 1 한국인이다. 그의 외증조부는 일제강점기 때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생활터전을 옮겼다. 6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온 외할아버지는 일본 여성과 결혼해 히사다 씨의 어머니를 낳았다. 그러나 문화의 차이 등으로 외조부모는 얼마 되지 않아 헤어졌고, 히사다 씨의 어머니는 일본 여성인 외할머니가 키웠다. '일본인' 히사다 씨는 소카(創¤)대 법학과 4학년 때인 1999년에서야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됐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뵈었습니다. 그 때 제 몸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걸 처음 알게 됐죠. 어머니는 자라면서 '조센진(朝鮮人)'이라는 등 이지매(왕따)를 당했기 때문에 제게 뿌리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학원 진학 직후인 2000년 2월 그는 무작정 한국을 찾아 대구로 향했다. 어린 나이에 한국을 떠난후 죽을 때까지 고국을 다시 찾지 못한 외할아버지가 '나는 한국 사람, 고향은 대구 달성, 내 소원은 조국 통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 한국 방문 이후 그는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법학 석사학위 논문도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법적 지위 비교'였다.

석사학위 취득 후엔 아예 한국으로 건너왔다. 경희대 NGO(비정부단체) 대학원(1기), 성균관대 대학원 박사과정(행정학)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한국 배우기에 매달렸다. 이 과정에서 한국 NGO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2000년 16대 총선 때 시민단체들의 국회의원 낙선, 낙천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낙선, 낙천운동의 법적 문제를 떠나서 그 자체가 제겐 일종의 '충격'이었습니다. 일본 국회의원은 대부분 '세습 정치인'이고, '세습 정치'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일본인에게 선거란 별다른 흥미를 주지 못하는 것이거든요. 한국은 민주주의의 역사나 '직접 민주주의'라는 선거의 역사가 짧은데 어떻게 이처럼 정치인이 아닌 시민단체들까지 선거에 직접 참여하려하는 것일까 궁금증이 일었지요. 그 뒤 국회, 대학, 거리 등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을 관찰해보니 한국에서 정치는 공통적인 관심의 대상이자 토론의 주제더군요. 정치가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고나 할까요."

3월부터 홍익대 외국어학부 전임강사로서 대학생들에게 교양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히사다 씨는 "한국 대학생들에게도 정치는 하나의 생활인 것 같다. 일본어 강의 시간에도 특정 현안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을 벌일 정도로 정치가 생활화돼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요즘 20대는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는 평가를 들어요. 하지만 한국의 20대가 국가, 정부, 국회의 일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을 볼 때면 정말이지 놀랍습니다."
연신 "한국 정치의 힘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이 많다"고 감탄사를 연발한 히사다 씨는 "한국과 일본 국회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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