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감시권’ 제밥그릇 걷어찬 국회

  • 입력 2009년 10월 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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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법사위 의결 ‘특수활동비 공개’ 예결특위서 백지화

다른案 755건에 묶어 처리… “권력기관 눈치보기” 비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이 영수증 없이 사용하는 특수활동비 집행내용을 일부라도 공개하려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의 시도가 무산됐다. 이들 상임위원회가 ‘2008년 세입세출 결산안’에 포함시킨 시정요구안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백지화됐기 때문이다.

5일 국회에 따르면 예결특위 결산소위(위원장 이시종 의원)는 지난달 29일 비공개 회의에서 기획재정위와 법제사법위가 예결특위로 넘긴 국세청과 법무부, 감사원에 대한 특수활동비 시정요구안을 ‘편성 목적에 맞게 집행해 부적절한 집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수정했다. 특수활동비 내용 공개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문구 없이 사실상 ‘해당 기관이 알아서 잘 사용하라’는 권고안 형식으로 손질한 것이다. 당초 재정위는 국세청에 대해 ‘본청과 지방청별로 특수활동비의 월별 집행액을 공개하라’고 의결했고 법사위는 재정위 의결을 근거로 법무부와 감사원에 대한 시정요구안을 마련했었다.

예결특위 결산소위가 수정한 시정요구안은 예결특위 전체회의를 거친 뒤 같은 날 본회의를 통과했다. 결산소위 위원들을 제외한 예결특위 위원들도 대부분 시정요구안이 수정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수정된 시정요구안은 본회의에서 일괄 처리된 756건의 시정요구안에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일반 의원들이 파악하기 어려웠다.

재정위와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본회의 의결 이후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유선호 법사위원장은 “법사위가 만장일치로 의결한 안건을 사전 조율도 없이 백지화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내년도 예산안 심사 때 같은 내용의 특수활동비 규제방안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재정위 관계자는 “국회가 국세청과 검찰 등 권력기관 눈치를 보며 예산 감시권을 내팽개쳤다”며 “상임위 차원에서라도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안건을 의결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예결특위 결산소위원장인 민주당 이시종 의원은 “여야 소위 위원들의 논의를 거쳐 기관별로 동일한 특수활동비 규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요구사항이 지나친 상임위는 요구안을 완화시킨 것”이라고 해명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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