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니 딸도 만나고…”

  • 입력 2009년 9월 30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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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이산가족 상봉 두 번째 행사 첫날인 29일 금강산면회소에서 북측의 이혜경 씨(오른쪽)가 58년 만에 만난 어머니 김유중 씨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있다. 김 씨는 이산가족 상봉자 중 최고령자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추석 이산가족 상봉 두 번째 행사 첫날인 29일 금강산면회소에서 북측의 이혜경 씨(오른쪽)가 58년 만에 만난 어머니 김유중 씨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있다. 김 씨는 이산가족 상봉자 중 최고령자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100세 김유중 할머니, 이혜경씨와 58년만에 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 2차 행사가 시작된 29일 금강산면회소는 또 한번 눈물바다를 이뤘다. 상봉을 희망한 북측 가족 99명과 이들의 남측 가족 432명은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헤어져 산 세월을 한탄했다.

이번 상봉행사 참가자 중 최고령인 김유중 씨(100·여)는 꿈에 그리던 북측의 셋째딸 이혜경 씨(75)를 만났다. 경기여고 1학년이던 앳된 딸은 6·25전쟁 중 실종된 지 58년 만에 반백의 할머니가 돼 나타났지만 김 씨는 단번에 딸의 얼굴을 알아봤다. 김 씨는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했지만 동행한 4남매가 벌떡 일어섰다. 상봉 전부터 울어 눈이 벌겋게 충혈된 넷째딸 희경 씨(72)가 “언니, 언니!”라고 외치자 혜경 씨는 “희경아, 나 언니야!”라며 달려왔다.

혜경 씨는 상봉 테이블에 도착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어머니 김 씨 품에 안겼고 자매들과 부둥켜안은 채 한참동안 울었다. 혜경 씨가 “엄마, 건강하세요? 내 말 들려요?”라고 했지만 김 씨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혜경 씨가 “엄마, 울지 마세요”라며 분홍색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줬다. 가까스로 울음을 그친 김 씨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 오래 사니 딸도 만나고…”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남측의 아내 장정교 씨(82)와 북측의 남편 노준현 씨(81)는 유일한 부부 상봉자로 59년 만에 재회했다. 16세 꽃다운 나이에 시집왔던, 하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된 아내를 만난 남편은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는 듯 아내의 손만 쓰다듬었다. 장 씨는 “오늘 오나 내일 오나 기다리다가 내가 시부모님을 다 모셨어요. 잘 모셨다고 상장까지 받았어요” 하며 원망어린 눈빛으로 남편을 쳐다봤다. 노 씨는 “부모님까지 다 모셔주고, 내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 씨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북한에서 결혼해 2남 5녀를 뒀다는 소식을 전했다. 경북 예천군에서 농사를 짓던 노 씨는 1950년 북한군에 끌려갔다. 딸 선자 씨(64)는 아버지 앞에 주저앉아 “모시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다.

국군포로는 아니지만 6·25전쟁 당시 국군으로 싸우다 북측에 넘어간 상봉자들의 사연도 눈길을 끌었다. 1951년 1·4후퇴 당시 아버지 대신 국군에 입대했다가 실종됐던 북측 이윤영 씨(74)는 58년 만에 남측의 남동생 찬영(71), 진영 씨(65)를 만났다. 찬영 씨는 “이 세상에 없을 줄 알았던 형님이 건강하게 살아 있어 너무 고맙다”며 흐느꼈다. 윤영 씨는 북에 오게 된 경위는 자세하게 말하지 않은 채 “열심히 일해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며 손수건에 싸 온 훈장 11개를 동생들에게 내보였다. 윤영 씨는 “7남매에 손자 11명을 뒀다”며 ‘행복한 우리 가정’이라는 글씨가 쓰인 사진도 보여줬다.

한편 남측 이종수 씨(74)는 북측의 형 이종성 씨(77)가 가족상봉을 희망한다는 소식에 방북했으나 이날 만나 보니 자신의 형이 아닌 동명이인인 것으로 드러나 발길을 돌렸다. 종수 씨는 2005년 11월 진짜 형 종성 씨를 한 차례 상봉한 적이 있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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