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DJ에 대한 두 기억

  • 입력 2009년 8월 27일 02시 53분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한 남다른 기억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좋은, 다른 하나는 나쁜 것이다. 좋은 기억은 10여 년 전 미술 담당 기자로 대통령을 근접 취재했던 일이다. DJ는 1998년 7월 동아일보가 주최한 ‘심수관가(家) 도예전’ 개막식에 왔다. 취임한 지 반년 된 대통령이 신문사 주최 전시회를 봤다는 사실부터 뉴스였다. DJ는 심수관 씨와 작품을 둘러본 뒤 “일본이 조선의 도예를 받아들여 명품으로 발전시킨 데 비해 고려분청과 조선백자는 양반문화로 그 명맥이 끊긴 점을 반성해야 한다”며 “21세기는 문화가 기간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 씨는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로 400여 년간 성(姓)씨를 지켜온 도예가다.

이날 유달리 각인된 장면이 있다. DJ가 방명록에 서명을 하려 하자 경호원이 커다랗게 뭔가를 쓴 A4용지 한 장을 내밀었다. DJ는 이를 물리치고 단박에 ‘文化不滅(문화불멸)’이라고 썼다. 참으로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인상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문화예산(2000년)을 정부 예산의 1%가 넘게 편성했고, 5년간 5000억 원의 문화산업진흥기금 조성안도 마련했다. 이 기금은 문화와 콘텐츠 진흥 기금의 종잣돈이 됐다.

나쁜 기억은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다. DJ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12월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나 벤처 비리와 편중 인사로 비판에 직면했다. 이듬해 1월 DJ가 언론개혁을 역설하자 20여 일 뒤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동아 조선 등 비판 신문에는 40여 명씩 투입해 넉 달 넘게 조사했다. 유례없는 규모였지만 정권은 언론탄압이 아니라 언론개혁이며 국세청 단독 행정이라고 주장했다. 조사를 지휘한 안정남 국세청장은 건설교통부 장관에 임명됐다가 ‘패밀리 타운’ 조성 의혹으로 23일 만에 물러났다.

당시 미디어담당 차장을 맡은 기자가 후배와 함께 직접 취재한 것은 한겨레신문의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성한용 씨가 쓴 ‘DJ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라는 책이었다. 성 기자는 그 책에서 세무조사가 정권의 사전 기획이었다고 했다. 책에는 “세무조사는 정권 차원에서 모든 것을 걸고 한다” “국세청 간부들을 미리 다 호남 출신으로 바꿔 놓았다” “상속세로 뒤집어버리겠다” 등 실세들의 충격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괴물 같은 권력’을 실감했고 “책은 팩트와 증언을 토대로 썼다”는 성 기자 전화인터뷰를 보완해 기사가 나갔다. 파장은 컸고 세무조사의 실체가 언론탄압이었다는 사실이 공론화됐다. 세무조사는 또 우리 사회에서 보수 진보 간 격론을 일으켰다. 그 바람을 탄 MBC 한겨레가 동아 조선 등을 공격하면서 언론 간 분열의 씨앗이 뿌려졌고, 이는 노무현 정권 때 언론 간 편 가르기로 더 깊은 골이 됐다.

DJ는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북에서 조문단이 왔다 갔고 남남갈등을 해소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이를 보면 DJ에 대해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함께 지닌 이들이 많은 듯하다. 더욱이 DJ는 비판 신문에는 화해의 손짓을 하지 않았고 언론 간 화해도 남은 이들의 몫이 됐다. 하지만 좌파 성향의 매체들이 DJ의 일기에서 ‘노무현 자살은 강요된 것’ ‘독재자는 역사의 가혹한 심판’ 등을 앞세우는 것은 화해 메시지와 거리가 있다. 화해를 하려면 나쁜 기억부터 보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도 DJ를 언론 탄압이 아니라 문화 인물로 기억하고 싶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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