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조문단에 ‘유엔과 한국의 원칙’ 분명히 보여야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북한의 김기남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포함한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國葬) 조문단 6명이 오늘 서울에 온다. 이들은 23일째 북에 억류 중인 800연안호 선원 4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이 서해 직항로를 통해 김포공항으로 들어와 내일까지 머물 예정이다. 금강산 관광재개 등에 관한 ‘김정일-현정은 합의’에 이어 조문단 파견이 남북관계의 미묘한 변수로 떠올랐다. 북은 작년 12월 시작된 육로통행 및 체류 제한 조치도 풀겠다고 어제 통보해 왔다. 유엔안보리 결의안 1874호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로 고립된 북이 다각도로 화해 공세를 펴는 양상이다.

그러나 북은 조문단 파견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협의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공식 채널을 배제하고 김대중평화센터 창구를 통했다. 이러니 ‘사설(私設) 조문단’이란 말까지 나온다. 민간 차원의 사업에 관한 합의와 조문단 파견을 허겁지겁 추인(追認)하는 모습을 보인 정부에도 문제가 있다. 남북 당국이 논의해야 할 사항을 민간과 먼저 접촉하는 ‘통민봉관(通民封官)’ 전술에 매번 끌려다닐 것인가. 북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는 조전(弔電)을 보내자마자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조문단 파견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당국간 대화가 열려 남북관계가 개선되리라고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정부 당국자가 북 조문단을 만나더라도 유엔의 제재 결의와 우리의 원칙이 흔들려선 안 된다.

금강산관광 재개가 유엔 결의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성급하다. 남한 관광객들이 낸 돈이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에 다시 쓰일 가능성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맛대로 놀아난 과거 10년간의 남북관계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지적은 새겨들을 말이다.

개성공단 활성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서는 남쪽 관계자와 관광객의 신변안전 보장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박왕자 씨 사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 및 사과도 선결요건이다. 북이 핵 폐기를 위한 6자회담으로 하루빨리 다시 돌아와야 함은 물론이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북의 일시적 평화 공세에 속아서는 안 된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그제 동아일보 인터넷 방송뉴스에 출연해 “북한은 핵무기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면서 “북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남쪽은 (변한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속셈을 꿰뚫어보는 그의 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는 북측과 대화 재개를 모색하되 미국과의 공조 틀 속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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