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필요성 믿지만 국론 분열 우려” 소통정치 1탄

  • 입력 2009년 6월 30일 02시 58분


4대강 사업 ‘대운하 의구심’ 제거… 소모적 논쟁 쐐기
생태복원 성공 태화강 거론하며 治水중요성 강조
정세균 민주당 대표 “진정성 있다면 예산 조정해야”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라디오 연설에서 임기 내에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통합과 소통 정치’의 상징적인 메시지로 평가된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이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다. 지난해 6월 19일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다면…”이라며 ‘조건부’ 포기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그동안 이 대통령이 대운하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당청 회동에서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천명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건의했지만 이 대통령은 “굳이 미리 안 한다고 할 필요가 있느냐”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최근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타당성을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른 글을 인용하며 “적지 않은 분들이 ‘20조 원 가까이 들여 건설사들의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고 따지는 것을 읽으며 정말 가슴이 답답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이 이날 임기 내 대운하 사업 추진 포기 의사를 천명한 것은 ‘결단’에 해당한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중도실용과 국민통합, 소통의 정치를 위해 자신의 오랜 소신을 접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결정엔 정치권에 정쟁 중단을 촉구하는 공세적 의미도 담겨 있다.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대운하 사업이 정치 갈등의 소재 혹은 도구로 활용돼 왔던 만큼 아예 포기를 선언함으로써 정쟁의 빌미를 제거하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제 믿음에는 지금도 변화가 없다”고 했다. 그만큼 애착을 가졌던 대운하 사업의 포기는 나아가 향후 국정 운영 스타일의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른 글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자신의 뜻을 밝힌 것은 국민과의 소통 강화에 더욱 신경을 쓰고 통합의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메시지라는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직접 홈페이지의 글을 보다가 정치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다는 것을 절감하고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는 오해나 의구심을 불식시켜 대운하를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서는 더는 왈가왈부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의 뜻도 담겨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생태 복원에 성공한 한강과 울산 태화강을 예로 들며 치수(治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만일 한강을 그냥 놔뒀다면 과연 오늘의 한강이 되었겠느냐. 잠실과 김포에 보를 세우고 수량을 늘리고 오염원을 차단하고 강 주변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한강이 된 것이다. 완전히 죽었던 태화강을 준설해서 물을 풍부하게 하고 환경친화적으로 강을 정비하니까 울산의 보물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난 5년간 평균을 보면 연간 홍수 피해가 2조7000억 원이고 복구비가 4조3000억 원이나 들었다”며 비용 면에서의 타당성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임기 내에 하지 않겠다는 것은) 대운하 의심 예산을 계속 투입해서 대운하 준비를 다 해놓겠다고 하는 뜻 아니냐”며 “여전히 국민을 현혹시키고 헷갈리게 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면 조건 없이 대운하 추진을 하지 않겠다고 해야 한다. 진정성을 갖고 대운하 추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면 예산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서 대운하 논쟁을 이어갈 뜻임을 분명히 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일부 환경단체 “사실상 기만… 못 믿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중 대운하 포기 선언에 지역 환경운동 단체들은 부정정인 반응을 보였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염우 사무국장은 “대운하를 포기해도 4대 강 사업이 진행된다면 결국 강 파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 임희자 국장은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대운하가 (시간적으로) 현 정부에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것”이라며 “바닥을 준설하고 보를 설치하려는 현재의 4대 강 사업은 강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처사일 뿐 아니라 향후 대운하 사업을 시도하기 위한 전 단계 조치라는 의혹이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부산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핵심은 보와 댐의 준설인데 낙동강을 폭 200m로 준설하는 것은 운하 건설로 보면 된다”며 “이런 계획 자체를 철회하지 않는 한 이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은 29일 조달청이 영산강 낙동강 한강 금강 등 4대 강 살리기 사업 추진을 위한 12건의 턴키(일괄입찰) 공고를 낸 것에 대해 “이 대통령의 임기 내 운하 추진 중단 발표를 한 뒤 곧바로 4대 강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입찰공고를 낸 것은 사실상 기만”이라고 비난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볼장 다봤다” 대운하株일제히 하한가▼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임기 내에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관련주들의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다. 이날 코스닥시장에서 철제 거푸집 생산업체인 삼목정공의 주가는 가격제한폭인 705원 떨어져 3995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 밖에 울트라건설 동신건설 이화공영 등 대운하 관련주로 분류되던 대부분의 종목이 일제히 하한가로 떨어졌다.

이들 대운하 관련주는 이 대통령의 당선 직후인 2007년 말∼2008년 초에 이전 주가의 5∼10배 수준으로 뛰어오른 뒤 정부의 대운하 추진 여부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급등락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대운하 관련주들 가운데는 사업구조나 회사 성격상 대운하가 추진된다고 해도 직접 혜택을 받는다고 확신할 수 없는 종목들도 많아 증시에서는 적정가치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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