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여기자들 재판 6월 4일로 잡은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보천보전투 승리기념일 택해…“美에 굴복 않는다” 선전 노린듯
북한이 억류 중인 미국 여기자들에 대한 재판 날짜를 6월 4일로 발표했다. 그런데 이 6월 4일은 북한에서 특별한 날이다. 이날은 ‘보천보전투 승리기념일’이다. 보천보전투란 항일군 지휘관이던 김일성 주석이 1937년 최초 국내 작전으로 당시 함경남도 갑산군 혜산진 보천보면 일대를 공격했다는 사건이다. 북한은 이 전투에 대해 “조선은 죽지 않고 살았으며 조선의 정신도 살았다는 것을 대내외에 보여준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김 주석이 전투 신호총을 쐈다는 이날 오후 10시엔 매년 북한 전역에서 주민들이 소속별로 ‘야외 우둥불(모닥불) 모임’을 갖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북한은 이런 날에 미국 여기자들에 대한 재판을 진행해 주민들에게는 ‘초강대국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정신’을, 미국에는 ‘재판까지 끝났으니 향후 처리는 전적으로 미국 태도에 달렸다’는 메시지를 보여 주려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미 1968년 미군 정보수집함을 납치한 뒤 승무원 석방 대가로 ‘미국의 사과문’이라는 정치적 승리를 얻어내 내부 결속 계기로 활용했던 ‘푸에블로호’ 사건과 같은 전례도 있다.
이를 감안하면 북한은 억류한 현대아산 직원 A 씨 문제도 내부 선전용으로 활용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우선 주목해야 할 날짜는 6월 15일이다. 이날을 계기로 A 씨를 석방하면 “6·15공동성명의 화해와 협력의 정신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것은 우리”라는 대내외 선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남측이 어느 정도 ‘성의’를 표시해야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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