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 못참고 北 등져
中남성 씨받이 역할도
北고문 상처 보여주자
기자회견장 눈물바다
지난달 29일 오후 3시(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 미국 비영리 시민단체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탈북여성 77명의 육성 증언을 토대로 한 인신매매 인권보고서 ‘거래되는 인생(Lives for Sale)’ 발간하는 것을 기념해 2명의 탈북여성들이 육성 증언했다. 이들은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한 고통을 눈물로 증언해 기자회견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먼저 증언한 무산광산 선전대에서 배우로 활동했던 방미선 씨(2004년 한국 입국)는 2002년 남편이 굶어죽은 뒤 두 자식에게 밥이라도 배불리 먹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생계형’ 탈북을 감행했다. 그러나 중국에 가자마자 인신매매단에 팔려 여러 차례 강제결혼을 하는 등 인권유린을 경험했던 방 씨는 “북한여성들이 더는 짐승처럼 팔려 다니지 않게 되길 소원한다”며 자신의 비극적 삶을 털어 놓았다.
방 씨는 “중국 가면 밥도 많이 먹을 수 있고 북한에서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어 탈북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현실은 비참했다”며 울먹였다.
그는 “인신매매 시장에서 585달러에 중국 장애인 남성에게 팔렸고 그 다음에도 다른 남성들에게 다시 매매됐다”며 “마지막에는 14세 연하의 남자와 결혼해야 했고 그 남자는 아이 낳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 씨는 중국 공안에 붙잡혀 탈북자 신분이 드러나는 바람에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 그곳에서는 지독한 매질과 강제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 씨는 “북한으로 다시 끌려가 강제수용소에서 너무 매를 많이 맞아 지금도 제대로 걷지 못한다”며 치마를 걷어 올려 당시 고문으로 생긴 허벅지 상처를 직접 보여줬다. 기자회견장에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말을 잇지 못한 방 씨는 “나와 같은 희생자가 더는 나오지 않도록 미국과 국제사회가 도와줘야 한다”며 “북한여성이 앞으로 이런 고통을 받지 않는 세상이 오도록 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어 증언에 나선 김영애 씨는 “탈북 후 중국에서 겪은 인신매매의 고통은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을 정도의 이야기이지만 (내 증언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면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서게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씨 역시 남편과 사별한 뒤 어린 아들을 벌어 먹이기 위해 ‘고향’을 등지게 됐다.
김 씨는 “중국으로 가는 탈북을 도와준 사람이 인신매매조직 일원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며 “730달러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중국 남자에게 팔려 딸까지 낳았다”고 말했다.
이후 남자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에서 도망쳐 나온 뒤에도 몇 차례 다른 중국인 남성에게 팔리기를 거듭한 뒤 2007년 12월 24일 남한으로 올 수 있었다. 김 씨는 당시 중국에서 낳은 아이가 1명 있지만 여건이 안 돼 데려오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인권위원회는 이날 내놓은 64쪽짜리 보고서에서 “중국과 북한 탈북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에 대해 전 세계는 너무 오랫동안 눈을 감은 채 침묵해 오고 있다”며 “누구에게도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강제 결혼과 감금, 그리고 북한 강제 송환 시 고문과 극단적인 경우 죽음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하는 탈북여성들의 참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