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김정일 정권 다시보기

  • 입력 2009년 4월 24일 20시 07분


15일 저녁 평양 대동강변에서 호사스러운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15년 전 사망한 김일성의 97회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였다. 북한은 ‘강성대국의 불보라’라는 제목의 불꽃놀이를 축포야회라고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쌀쌀한 밤공기를 무릅쓰고 두툼한 잠바 차림으로 나와 처음부터 행사를 지켜봤다. 음악에 맞춰 형형색색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고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불꽃 폭포가 쏟아졌다. 조선중앙TV의 남녀 아나운서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식의 축포야회’ ‘장군님께 드리는 천만군민의 감사의 꽃다발’을 비롯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불꽃놀이를 찬양했다.

떨어지는 불꽃이 식량이라면

인터넷방송 서평방송 사이트에 올라있는 45분짜리 불꽃놀이 실황을 보는 것은 고역(苦役)이다. 필자는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로 가슴을 치며 방송을 봤다. 누리꾼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많은 누리꾼이 불꽃에 취하는 대신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재확인하고 분통을 터뜨린다. “백성들은 밤하늘에서 돈이 타는 것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린다” “밤하늘에서 타는 불꽃이 식량이 되어 떨어지면 얼마나 감사하랴”…. 평양 사나이라고 밝힌 탈북자는 “북녘의 동포들이여 저 불길을 보느냐. 저 불꽃이 터질 때마다 당신들의 피와 땀이 불타는 것이다”라고 절규했다.

불꽃놀이는 북한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북한은 지금 잔치판이다. 김일성의 생일(15일)을 기념하기 위해 ‘중앙보고대회’ ‘4월 봄 친선예술축전’ ‘김일성화 축전’ 같은 크고 작은 행사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추대를 축하하는 행사도 평양에 이어 각 도와 시군에서 차례로 열렸다.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광명성 2호 발사를 환영하는 군중대회도 이어달리기를 하듯 전국을 누볐다. 평양에서 열리는 행사는 어김없이 ‘10만여 명의 각 계층 수도시민’이 참석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북한 정권은 주민을 위해 써야 할 돈을 자신들을 위한 잔치에 퍼붓고 있다. 국내의 불꽃놀이 전문가는 대동강변 행사에 대해 “불꽃 발사 반경과 음악에 맞춘 불꽃 발사 기술, 전체적인 연출 수준을 고려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억 원은 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중국에서 불꽃놀이 프로그램을 일괄 도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돈 10억 원은 북한에는 큰돈이다. 북한의 올해 예산 4826억 북한원은 조선무역은행 고시 기준(달러당 141원)을 적용해 환산하면 34억2000만 달러지만 현재 북한에서 통용되는 환율(달러당 3700원)로 계산하면 1억3000만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나라에서 한 시간도 안 되는 불꽃놀이에 10억 원(약 74만 달러)이 넘는 돈을 썼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해마다 외국에 손을 내미는 북한에서 벌어진 일이다.

북한에 대한 환상을 깨자

북한은 김일성 출생 100년이 되는 2012년에 강성대국에 진입할 것이라고 떠벌리고 있다. 앞으로 3년간 북한 정권은 얼마나 극렬하게 주민들을 김일성 부자 우상화에 동원할 것인가. 대남정책도 그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북한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왜곡된 대북(對北) 시각을 바로잡을 때가 됐음을 말해준다. 핵에 이어 미사일 위협까지 하는 김정일 집단을 화해를 추구하는 정권으로 미화한 잘못에서 벗어나야 한다. 2400만 주민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화판 잔치에 몰두하는 북한 정권에 무슨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북한에 대한 환상을 깨자는 말은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에서 먼저 나와야 옳다. 아울러 ‘포스트 김정일’을 바라보는 긴 안목의 대북정책도 준비해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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