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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4월 17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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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국정원이 제동
컨트롤타워 부재 노출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발표 시기를 둘러싼 정책 혼선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외교통상부와 통일부 간의 관료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16일 “노무현 정부 때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같은 컨트롤타워가 없는 상황에서 외교부가 조직 확대를 추구하다가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에 일격을 당한 셈”이라고 말했다.
▽제동 걸린 외교부의 독주(獨走)=외교부는 미국이 만든 국제협조 체제에 참여해 한미관계를 공고하게 하고 글로벌 협력 차원에서 외교 역량을 강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PSI 전면 참여를 추진해 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PSI 체제 바깥에 있다 보니 회의가 언제 열리고 무엇을 논의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국제무대의 정보 교류 과정에서 우리는 소외돼 있다”고 말했다. PSI 전면 참여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남북대화와 협력기회 확대를 통해 실추된 명예와 조직 재건을 도모하던 통일부는 PSI 전면 참여가 현실화되자 절박한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PSI를 통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가뜩이나 코너에 몰린 북한을 자극하면 남북대화의 장기간 단절이 불가피해 자칫 부처의 존재 의미를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관계부처장관회의에서 부처 간 상충되는 이해관계는 여실히 드러났다. 외교부가 이날 PSI 전면 참여 발표에 드라이브를 걸자 통일부가 강하게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여기에 대북 대화 및 공작을 담당하는 국정원이 각종 첩보 등을 토대로 통일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 대통령의 의중을 돌린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외교부가 아마추어처럼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도 한몫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외교부 사람들은 15일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이기 때문에 다른 날짜를 고려해야 하는 것 등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여전한 부처 간 앙금=발표 시점을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단순히 PSI 참여문제라는 정책결정 차원을 넘어 북한 문제를 둘러싼 조직 이기주의와 컨트롤타워 부재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PSI 전면참여 발표를 미루게 한 것은 외교부의 관료주의에 제동을 건 것”이라며 “외교부 출신들이 현 정권에 들어서 외교안보 라인의 요직을 다 차지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대통령도 외교부의 ‘독주’가 지나쳤다고 본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태의 문제점을 바로 보고 조정하려는 노력과 인식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문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남북 현안에 대한 외교부와 통일부 간의 인식 차이에 대해 “협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PSI 정식 참여 결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고 시점만 달라졌기 때문에 정책 혼선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부처 간 갈등이 쉽게 풀어질 성격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북한 문제에 대해 ‘강압 정책’을 계속 고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화 정책’을 펴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청와대 관계자도 “외교부와 통일부는 합심해서 일할 수 없는 구조”라고 우려했다.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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