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포인트 가드 오바마와 强스매시 이명박

  • 입력 2009년 2월 1일 20시 01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농구광이다. 이번 대선 때도 틈만 나면 참모들과 편을 나눠 경기를 가졌을 정도다. 백악관에 입성하면 구내 볼링장을 없애고 농구 코트를 만들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와이 주 푸나우고교 농구팀 출신으로 1979년 팀이 주(州)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때 멤버였다. 주전은 아니었지만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고 한다.

키 186cm, 체중 81kg인 그의 포지션은 프로농구 삼성의 이상민 선수와 같은 포인트 가드다. 코트의 야전사령관으로 볼 배급과 경기 조율을 맡고, 고비 때는 외곽슛으로 해결사 노릇도 한다. CNN은 지난달 15일 미국프로농구(NBA)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레지 밀러(43)를 출연시켜 오바마의 경기스타일을 집중 분석했다. 농구를 통해 그가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짚어보자는 프로였다. 밀러는 3점슛 통산 2560개로 이 부문 NBA 기록 보유자다.

밀러에 따르면 오바마는 선수들 각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끌고 배려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속공을 할지, 지공(遲攻)을 할지도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서 결정한다. 밀러는 그의 이런 자질이 백악관에서도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의 경기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구해 몇몇 전문가들에게 보여줬더니 그들의 평가도 같았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 챔피언인 동부의 전창진 감독은 “오바마가 개인플레이보다는 팀워크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했다. 전자랜드의 최희암 감독은 “수비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 남들이 싫어하는 일도 기꺼이 하는 선수”라고 평했다.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도 “동료를 살려주는 플레이를 해 팀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한다”고 칭찬했다.

선수들을 춤추게 하라

중요한 것은 이런 경기 스타일이 국정(國政) 운영에 어떻게 반영되느냐일 것이다. 취임 보름밖에 안 돼 속단하긴 어렵지만 나라 밖으로는 일방주의 대신 협력과 공조를, 안으로는 통합과 책임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향후 국정기조를 짐작하게 한다. 정치적 경쟁자를 중용하고, 법안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거는 모습에서 팀의 승리를 위해 헌신하는 ‘포인트 가드 오바마’를 떠올리는 것은 비단 미국 국민만은 아닐 것이다.

농구하는 오바마 위로 테니스광인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농구는 단체경기이고 테니스는 개인경기여서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은 승부욕과 성취욕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식경기를 할 때면 상대팀은 동호인이 아닌 선수 출신들로 짜여지기를 바라고, 자신의 파트너도 선수 출신을 선호한다. 국가대표를 지낸 한 테니스인은 “(성취욕이 강해서) 발리와 스매시 같은 적극적인 공격을 즐기고, 특히 복식에서 포치를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포치(poach)란 네트 앞쪽에 있는 전위플레이어가 뒤쪽 후위플레이어가 받아야 할 볼을 잡아 발리로 연결시키는 공격인데 판단력과 결단력이 뛰어나야 성공할 수 있다. ‘포치’라는 말에서 이명박 냄새가 물씬 난다. 남다른 성취욕과 결단력으로 성공신화를 쟁취한 강인한, 그러나 필마단기(匹馬單騎)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이어서 그럴 터이다.

포치는 쉬운 기술이 아니다. 발리로 연결하려면 손목의 힘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자칫하면 볼이 네트에 걸리거나 아웃된다. 네트에 붙어있다 보니 시야도 좁아지고, 후위플레이어(파트너)가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손목의 힘을 조절하는 능력,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는 일이 관건인데 공교롭게도 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지적이 가능하다. 일을 추진하되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폭넓게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문이 바로 그것이다.

‘포치’에서 ‘패스’로 스타일 바꿔라

이 대통령은 오바마로부터 배울 게 많다. 무엇보다 팀 선수 전원을 경기에 몰입하게 만드는(get everyone involved) 오바마의 리더십에 주목해야 한다. 창의력과 돌파력은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모두를 동참케 하는 아량과 역량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농구 코트라면 그 안에서 뛰는 사람은 모두 내 선수다. 누구에게라도 볼을 패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 선수가 박근혜 의원이라도 마찬가지다. 집권 2년차라면 ‘포치’에서 ‘패스’로 스타일을 바꿀 때가 됐다. 오늘 청와대 오찬부터가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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