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국 해제’ 北에 선물만 한 6자회담

  • 입력 2008년 12월 13일 02시 58분


■ 회담 결렬 이후

오바마 경제위기 극복 올인… 북핵은 후순위 가능성

美 새 협상팀 꾸리는 내년 3, 4월까진 회담 중단될듯

日언론 “한국이 확연히 美-日 편으로 돌아섰다” 평가

11일 북핵 6자회담이 사실상 결렬되자 워싱턴의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검증의정서’ 합의라는 꽃놀이패를 쥔 북한이 이미 레임덕을 지나 브로큰덕이라고 불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선물을 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10월 평양 방문에서 구두 합의한 검증의정서를 전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분명하고 모호하지 않은’ 합의문으로 바꿔 보려 했던 ‘승부사’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노력도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허탈한 미국=백악관과 국무부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2003년 8월 이후 5년 4개월 동안 진행된 6자회담의 기본원칙인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강조한 뒤 “비핵화의 핵심인 검증에 대한 합의 없이 6자회담은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북한의 불능화에 대한 대가로 지원되는 중유를 위주로 한 100만 t 상당의 경제·에너지 제공의 중단을 시사한 것.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도 “행동 대 행동원칙에 대해 재고해 볼 것”이라며 “분명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에너지 지원”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경제·에너지 지원율은 60% 정도. 미국이 20만 t, 한국이 약 15만 t, 러시아와 중국이 각각 10만 t 정도를 지원했으며, 러시아가 이번 달 5만 t의 중유를 북한에 보낼 예정이었다.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1일 회담 종료 뒤 “(대북 에너지 지원이) 이행되겠지만 언제 완료될지는 모른다”고 말해 ‘유보’를 강력히 시사했다.

회담 첫날인 8일부터 ‘검증의정서 채택과 대북 에너지 지원 포괄적 연계 방침’을 주장했던 한국 대표단은 검증의정서 채택이 불발되자 ‘내년 3월까지’로 6개국 간 공감대가 이뤄졌던 에너지 지원 완료 일정표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6자회담의 운명은?=북핵 6자회담의 운명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 협상을 전담할 국무부 차관보 등 라인업을 꾸리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최소한 내년 3, 4월까지 6자회담은 중단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또 무엇보다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가 가장 시급한 현안이고 외교안보 이슈에서도 북핵문제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중동평화협상 등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린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 선임연구원은 “북핵문제는 ‘잊혀진 이슈’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 정부의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마이클 그린 전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국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것은 실수”라며 “북한이 우리를 속였음을 이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달라진 한국?=요미우리신문은 12일 6자회담 폐막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대표단의 자세가 확연하게 ‘미국과 일본 편’으로 전환해 주목을 끌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이는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과 미일의 중개 역할을 하려 했던 노무현 정권 시대와는 대조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은 12월 초 도쿄(東京)에서 열린 한미일 수석대표회의에서도 북-미의 검증 초안에서 샘플 채취 실시 여부가 모호하게 표기된 것에 대해 일본과 보조를 맞춰 미국에 시정을 요구했다”고 지적하고 한국이 3국간 협조체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다만 이 같은 한미일의 ‘긴밀한 연대’는 내년 1월 오바마 정부가 탄생하면 미묘하게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베이징=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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