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10월 8일 02시 54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소선거구땐 의석수 줄어든다” 서초-강남 구의원 집단 반발
“통장 수당-학자금 지원 끊긴다” 부녀회 등 직능단체들도 반대
“유서깊은 동네이름 없앨수야” 가회-삼청동 주민 자존심 싸움
박성중 서울 서초구청장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기존 18개인 동(洞)을 8개의 대동(大洞)으로 통폐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서초구는 올해 1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주민 1500명을 대상으로 동 통폐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82.4%가 찬성했고, 반대는 17.5%에 그쳤다.
하지만 7일 현재 서초구의 동 통폐합 추진 실적은 전무하다.
자신들의 자리가 없어질 것을 우려한 구의원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중선거구제인 지방의원 선거 제도가 소선구제로 환원될 경우 동 수가 줄어드는 만큼 의석도 줄어들 수 있다는 논리다.
한 구의원은 “서초구 내 대부분 동은 이미 인구 2만 명이 넘어 다른 구의 2개 동을 합친 것과 비슷하다. 다른 구의회와 형평성이 맞지 않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방행정체계 개편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작은 행정단위인 동을 합치는 일부터 온갖 파열음이 나고 있다. 서울시 동 통폐합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항은 지방행정체계 개편의 험난한 앞길을 예고하고 있다.
구의원들의 집단 반발은 서초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남구 역시 한 개의 동 통합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동 통합을 위한 조례 개정권을 구의회가 갖고 있어 동의 통폐합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자치위원회, 통장, 새마을 부녀회와 새마을 지도자협의회 등 직능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직능단체인 주민자치위원회는 각 동에 25명 이내의 위원을 둘 수 있지만 동이 합쳐지면 자리가 줄어든다. 지역 유지들로 구성되는 주민자치위원회는 문화교실이나 외국어 교실 등을 여는 주민자치센터의 운영권을 가지고 있어 힘이 막강하다.
월 20만 원의 기본수당과 중고교생 자녀의 학자금 일부를 지급 받는 통장들도 이해관계에 얽혀 있다 보니 반대하는 사례가 많다. 새마을 부녀회나 지도자협의회 등도 마찬가지.
한 구청의 관계자는 “사실 동이 줄어들어도 일반 주민들은 별로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직능단체들이 주민을 내세워 반대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 “우리 동 이름은 절대 못 없애”
동 명칭이나 동의 성격을 둘러싼 주민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동 통폐합이 지연되기도 한다. 역사가 오래된 종로구에 이런 곳이 많다. 가회동과 삼청동이 대표적이다.
유강열 삼청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삼청동은 ‘도심 속의 시골동네’라는 특별한 브랜드 가치가 있다. 주민들은 ‘동 통합’ 얘기만 나오면 마치 외세 침범이라도 당한 것처럼 불쾌해한다”고 말했다.
권호성 가회동 주민자치위원장 역시 “가회동처럼 역사성이 있는 동네는 계속 살려야지 왜 자꾸 합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명륜3가동 역시 오랜 역사성을 이유로 혜화동과의 통합에 반대하고 있다.
이름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청운동과 효자동은 결국 청운효자동이라는 이름으로 합치기로 했다.
동 통폐합의 대가를 요구하는 곳도 있다. 광진구 능동과 군자동은 주변 어린이대공원 때문에 고도제한 등의 규제로 피해를 봐 왔다면서 동을 합치는 대신 고도제한 폐지와 용도지역 상향 등을 요구하고 있다.
○ 남는 동 주민센터는 주민복지시설로
서울시는 동 통폐합 사업을 통해 남는 인력을 사회복지나 문화 등 수요가 많은 곳에 재배치하고, 남는 동 주민센터(옛 동사무소)는 주민복지 시설로 활용할 방침이다. 조직은 줄이되 주민들의 삶에는 더욱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동 통폐합의 모범 사례인 마포구에서는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보다 앞서 이 사업을 시작한 마포구는 지난해 말까지 1, 2차 통합 작업을 통해 7개 동을 줄였다.
대신 남는 동 주민센터 건물을 리모델링해 장난감 대여점과 치매지원센터, 영유아 통합지원센터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518개의 행정동 가운데 23.0%인 119개 동의 통폐합을 추진해 온 서울시는 7일 현재 80개(67.2%)의 통폐합을 완료했다. 시는 올해 안으로 20개 동의 통폐합을 마무리 짓고, 내년 이후 19개를 추가로 통폐합할 계획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