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北, 금강산·개성 일자리 잊지 말라

  • 입력 2008년 8월 19일 19시 54분


북한 여자 선수가 지난주 베이징 올림픽 양궁 개인전에서 남한 기업이 만든 활을 들고 나와 4위를 차지했다. 북한의 권은실 선수가 8강전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남한의 박성현, 윤옥희 선수와 대결하는 동안 TV 화면에는 ‘SAMICK’이라는 제품명이 선명하게 새겨진 활이 여러 차례 클로즈업됐다. 남북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 장면이다.

‘개성 드림’ 헛꿈이 아니다

북한은 우리 양궁협회가 체육교류 차원에서 장비를 제공한 이후 한국 활에 익숙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작은 피동적이었지만 세계 최고 양궁의 비결을 알게 된 북한 대표팀은 ‘겁도 없이’ 남한 기업이 만든 제품을 올림픽 장비로 선택했다. 북한 정권도 차단하기 어려운 남북교류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해 표면적으로는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선 이미 뿌리를 내린 남북교류가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의 남한 관광객 사살로 초래된 금강산 사태를 풀 수 있는 해법이 담겨 있다. 북한은 남한의 관광 중단 조치에 맞서 불필요한 남측 인원을 추방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데 이어 금강산 체류자를 200명 이하로 줄이라고 요구했다. 대응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금강산의 문을 닫아거는 최후의 카드는 동원하지 않았다.

북한이 나름대로 신중하게 움직이는 데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은 남한 국민의 명소 구경에 그치는 일방적 사업이 아니다. 북이야말로 상당한 혜택을 누리는 호혜적(互惠的) 프로젝트다. 관광대금을 받아 챙기는 정권 말고도 1200여 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남한 관광객 덕분에 일자리를 얻었다. 이들은 금강산 지역의 호텔과 음식점의 종업원으로, 관광안내원과 시설 유지 보수 근로자로 일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 북한 처지엔 하늘에서 떨어진 일자리다.

시선을 서쪽으로 돌리면 상황이 더욱 분명해진다. 72개 남한 기업이 진출한 개성공단에는 현재 3만 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한 가구에 5명씩만 잡아도 남한 덕분에 먹고사는 북한 주민이 15만 명이나 된다. 북한에서는 남한 기업에 취업한 주민들을 ‘개성 드림(dream)을 이룬 사람들’이라며 부러워한다고 한다.

동쪽 금강산에서 발생한 사건이 서쪽 개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개성공단은 아직은 조용하다. 북한 근로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금강산 사건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기업 관계자들은 “북측도 금강산 사건이 남북관계를 해치는 불씨가 돼선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개성공단 중단은 북한에는 3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15만 명의 주민을 먹여 살리던 황금 거위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3만 명이 졸지에 실업자가 되는 것은 북한 정권이 감당하기 어려운 악몽이다.

북, 금강산 사태 結者解之가 현명

남한 관광객을 사살한 북한의 행위는, 이를테면 북한 사격선수 김정수의 금지약물 복용 같은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규정에 따라 북한 선수의 잘못을 처리했다. 남한의 잣대는 관광지에서 민간인을 살해하고, 진상규명을 거부하는 북한의 행태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은 IOC 규정 위반을 인정하고 메달 박탈을 감수한 것처럼 금강산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더구나 금강산 사태는 소중한 일자리와 직결되는 절박한 문제가 아닌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남한 활을 눈감아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이해(利害)가 걸려 있음을 북측도 알 것이다.

남북은 금강산 사건으로 이미 상처를 입었다. 오래 끌수록 피해는 커진다. 남한은 버틸 능력이 있지만 북한은 회복이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이쯤에서 매듭을 지어야 한다. 남과 북이 개성과 금강산에서 실현한 경제협력이 두 차례의 정상회담보다 더 확실하고 실질적인 성공사례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상생(相生)과 공영(共榮)의 대북정책’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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