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씨 허벅지 상처 ‘의도적 사살’ 암시

  • 입력 2008년 8월 2일 02시 56분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금강산 피격 사망사건 모의실험 결과 발표에서 정부합동조사단의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총기연구실장이 실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금강산 피격 사망사건 모의실험 결과 발표에서 정부합동조사단의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총기연구실장이 실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동조사단 “멈췄거나 보행 상태 100m 이내 조준사격”

1탄 파편에 허벅지 맞은 뒤

등-엉덩이 총 맞았을 수도

‘금강산 피격’ 모의실험 결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정부 합동조사단이 모의실험을 통해 북한의 주장과는 다른 두 가지 중요한 ‘과학적 추론’을 내놨다.

본보 1일자 A2면 참조 ▶ “북한軍 100m이내서 朴씨 조준사격… 정지상태서 총맞아”

합동조사단에 따르면 북한 측의 주장과 달리 박왕자 씨는 100m 안에서 근접 조준사격을 받았으며, 피격 당시 박 씨는 멈춰 섰거나 천천히 걷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합동조사단은 확답을 꺼렸지만 북한군이 의도적으로 박 씨를 사살했을 개연성이 높아졌다.

▽100m 이내에서 멈췄거나 걷는 여성 사살=조사단은 지난달 27, 28일 사건 현장과 조건이 비슷한 강원 고성군 해안에서 박 씨와 신체 조건이 유사한 50대 여성과 마네킹, 북한군이 박 씨에게 쏠 때 사용한 AK-74소총을 동원해 모의실험을 했다.

100m 이내의 근접 조준사격이라는 증거는 두 가지. 먼저 사격실험 결과 북한군이 세 발의 총을 쏴 박 씨의 엉덩이와 등에 두 발을 맞힐 정도의 명중률이 나오려면 의탁사격(총을 고정하고 쏘는 사격)일 경우 사격 거리가 100m 이내라는 결과가 나왔다.

북한 측의 주장대로 군인이 뛰어 도망가는 박 씨를 쫓아가다가 ‘서서쏴’를 했을 경우는 60m라는 결과가 나왔다.

피격 당시 박 씨가 멈춰 섰거나 걷고 있었다는 추정은 시신 부검과 옷의 상태로도 추정할 수 있다. 총알이 관통한 상처가 지표면과 평행이었기 때문이다. 또 원피스 위에 입었던 셔츠에도 총탄 흔적이 있어 박 씨가 뛰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동환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총기연구실장은 “박 씨가 뛰었다면 셔츠가 날려 셔츠엔 총탄 흔적이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취재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정주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허벅지 상처는 의도적 사격 암시=사건 당일인 11일 부검된 박 씨의 시신에는 허벅지 부근에 상처가 있었다. 조사단은 모의실험을 통해 이 상처가 총탄이 박 씨의 발 근처에 가격돼 조개껍데기나 돌 등이 튀어 생겼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 실장은 “허벅지에 충격을 감지한 박 씨가 멈춰 섰고 이후에 등이나 엉덩이에 총을 맞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추정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멈춰 선 박 씨를 따라가 잡을 수 있었는데도 총을 쏴 사살했다는 얘기다.

이는 그동안 북한이 현대아산을 통해 말한 내용을 뒤집는 것이다. 북한은 12일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담화에서 “공탄(공포탄)까지 쏘면서 거듭 서라고 하였으나 계속 도망쳤기 때문에 사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들은 윤만준 사장이 방북하고 돌아온 16일 이후 “북한군은 발이 빠지는 모래사장을 달렸고 박 씨는 비교적 표면이 단단한 바닷가에서 달려 거리가 벌어지자 총을 쐈다”며 북한 측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했다.

▽의도성과 우발성 확인 위해 현장조사 관철해야=북한군이 총을 쏜 것이 의도적인지 우발적인지에 대해 조사단은 “분명한 것은 병사가 총의 조준관을 통해 목표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알았다는 것”이라고만 말했다.

총격의 의도성 여부는 △박 씨가 군 경계지역 어느 지점까지 언제쯤 들어갔는지 △북한군이 박 씨를 언제 발견해 사격 직전까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해서는 북한 측 주장만이 있을 뿐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다. 조사단은 모의실험 결과 박 씨가 호텔을 나와 북한 측 주장대로 군 경계지역 800m 지점까지 들어갔다가 500m를 되돌아 가는데 약 31분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박 씨가 당일 오전 4시 18분에 호텔을 나가 적어도 5시 16분 이전에 사망했다는 증거만 있을 뿐이어서 현장 조사 없이는 과학적인 추론이 불가능하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한국 정부의 거듭되는 현장조사 요구에 불응하는 것은 현장을 보여주면 안 되는 불리한 사실이 있어서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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