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역풍으로 문 열어 한미FTA 대치로 끝났다

  • 입력 2008년 5월 30일 02시 58분


짐 싸는 ‘17대’ 17대 국회가 29일 막을 내렸다. 이념 논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17대 국회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선 이사가 한창이었다. 박경모 기자
짐 싸는 ‘17대’ 17대 국회가 29일 막을 내렸다. 이념 논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17대 국회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처리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졌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선 이사가 한창이었다. 박경모 기자
《17대 국회가 29일 4년간의 임무를 마치고 막을 내렸다. 17대 국회는 탄핵 역풍에 힘입어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득표를 하고 진보정당이 처음으로 원내에 입성하는 등 헌정사상 최초로 진보진영이 의회권력을 장악하면서 국민의 기대 속에 출발했다. 그러나 이른바 4대 입법(과거사법, 언론법, 사립학교법,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으로 전반기를 소비했고, 후반기에는 청와대 인사 문제,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따른 후폭풍 등으로 정책과 민생보다는 정치와 이념이 우선했다. 인사청문 제도가 정착되는 등 입법부의 위상을 올리는 데도 일부 기여했으나 여전한 단상점거, 몸싸움, 욕설 등의 추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 처리 실패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기에는 부족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신행정수도 - 이라크파병 - 전작권전환 등 ‘보혁갈등 4년’

과거사법-언론법-사학법 등 ‘4대 입법’ 국력낭비만 불러

몸싸움 단상점거 막말 야유 고성… 추태는 예전 그대로

○ 격동의 4년

4년 전 17대 국회의 문을 열었던 6개 정당 중 지금 명맥을 유지하는 정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2개당뿐이다.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열린우리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국민통합21이 사라지고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창조한국당이 새로 생겼다. 민주노동당 중 일부가 나가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299명으로 시작된 국회의원 수도 중간에 의원직 사퇴와 박탈 등의 사유로 8명이 낙마해 291명으로 줄었다. 그만큼 정당의 부침이 심했던 17대 국회는 굵직굵직한 사건들로 4년 내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2004년 신행정수도 건설법 위헌 결정, 국군 자이툰부대 이라크 파병, 4대 입법 논란, 2005년 부동산 대책, 노무현 대통령 대연정 논란, 2006년 지방선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찬반 논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논란, 바다이야기 비리, 2007년 노 대통령의 개헌 제의, 대선, 2008년 총선과 미국산 쇠고기 파동,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란 등은 국회를 내내 뜨겁게 달궜다.


▲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

○ 이념에 묻혀 민생 외면

그러나 진보 정당들이 ‘개혁입법’이라는 미명하에 추진한 이념입법은 국력 낭비만 했다는 지적이 많다.

2004년과 2005년 17대 국회 초반 내내 여야의 갈등을 촉발했던 이른바 4대 입법이 대표적이다. 각종 과거사법 추진은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과거에 얽매이는 듯한 시대인식으로 보수 진영의 반발을 불러왔고, 언론법은 언론 자유 침해, 사립학교법은 사학의 자유 침해 논란을 일으키며 헌법재판소까지 거치는 등 사회 전체를 ‘보혁갈등’으로 밀어 넣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16대 국회가 한-칠레 FTA를 통과시킨 반면 17대 국회는 2007년부터 올해 말까지 한미 FTA를 두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갈등만 벌이다 18대로 그 짐을 넘겼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법인세, 부가가치세 인하 등 민생 법안 처리도 18대로 넘어갔다.

몸싸움, 단상점거, 막말, 야유 등의 추태는 여전했다. 이해찬 총리 시절에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대정부질문 때마다 핏대를 세우고 목소리를 높이며 설전을 벌이기 일쑤였다.

2004년 12월 30일 4대 입법, 2007년 12월 BBK 특검법을 처리할 때는 상정을 막으려는 한나라당과 통과시키려는 여당 의원 사이에 몸싸움과 본회의장 단상 점거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나 대정부질문 때마다 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아 성원을 채우기 위해 본회의 시간이 예정보다 1시간씩 미뤄지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오후에 열리는 본회의장은 텅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17대 임기 마지막 날, 야당인 통합민주당이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고시 강행에 항의하며 장외투쟁을 선언한 것은 17대 전반적인 모습을 대변해준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모든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도입

비정규직 - 로스쿨 합의처리 성과▼

17대 국회에서는 인사청문회의 대상이 2005년부터 모든 국무위원으로 확대돼 국무위원에 대한 자질 검증이 더욱 엄격해졌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시절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은 국회 청문회에서 적격 판정을 받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도 남주홍 이춘호 박은경 장관 내정자의 경우 야당이 인사청문회를 거부하면서 압박해 탈락했고 김성이 장관 등도 청문회 과정에서 야당의 혹독한 검증을 거쳤다.

2006년에는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본회의 상정이 야 4당이 불참하며 무산돼 결국 청와대가 임명동의안을 철회하면서 입법부의 뜻을 관철시켰다.

2007년 1월 노 대통령이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하자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6개 정파 원내대표들은 힘을 합쳐 대통령에게 개헌 발의 유보를 요청했고 노 대통령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7대부터 비례대표 절반이 여성으로 채워지면서 여성 의원이 16대 21명에서 17대 때 39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들은 호주법 폐지 등의 법을 관철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7대 국회에서 법안 발의 건수가 7489건으로 16대 2507건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난 건 법안의 내용과 상관없이 활발하게 입법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여야는 간극이 컸던 비정규직 관련 3법, 로스쿨법, 국민연금법과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 등 굵직굵직한 법들을 합의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편 임채정 국회의장은 “국회가 국민과의 괴리를 극복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이날 “17대 국회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우리가 자성하는 날로 삼아야겠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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