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북송 탈북자 동영상’…다시 떠오른 악몽

  • 입력 2008년 4월 21일 02시 54분


최근 북한인권 단체들의 홈페이지에는 탈북자들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원에게 붙잡혀 취조를 받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이 동영상은 길이가 8분가량으로, 북한 국경 부근의 보위부 시설에서 남녀 탈북자들이 겪는 처참한 현실을 담고 있다.

동영상 속의 보위부원은 무릎을 꿇은 탈북 여성에게 중국에 가서 성행위를 했느냐고 추궁하면서 눈 뜨고 보기 힘든 잔혹한 폭력을 행사한다. 마구 짓밟고, 머리를 피 묻은 벽에 짓찧고, 끈으로 목을 조이고,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탈북 남성에게는 각목으로 주리를 틀더니 이어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구타한다.

동영상을 입수한 대북인권단체 ‘북한정의연대’는 “북송 탈북자에 대한 취조의 실체를 알기 위해 보위부원에게 돈을 주고 영상을 입수했다”라고 밝혔다.

이 동영상이 실제 취조 상황을 담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일각에서는 돈을 주고 취조상황을 재연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진위야 어떻든 이를 보며 기자는 희미해져가던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 몸서리를 쳐야 했다. 기자도 탈북했다가 북송돼 보위부에서 취조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취조받던 심문실도 동영상처럼 흰 석회벽에 콘크리트 바닥이었고, 북한식 라디에이터와 책걸상 하나만 놓여 있었다. 각목과 의자로 구타당하고, 총 꽂을대로 손가락을 비틀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북송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번 동영상의 내용은 아무것도 아니다. 온갖 비인간적 행위가 남발되는 곳이 보위부 취조실이다.

한 탈북자는 수기에서 “보위부원들이 북송된 남녀 탈북자들을 알몸으로 만들어 한 줄로 세운 뒤 노래를 부르며 한 발을 들고 춤추게 하고는 이를 구경하며 웃었다”고 회상했다. 보위부 취조실이 인권의 불모지임을 폭로하는 다른 참혹한 증언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도 이른바 ‘햇볕정책’ 이후 남쪽의 방송매체에서는 북한의 어두운 모습이 ‘방영불가’ 항목처럼 취급돼 왔다. 방송들이 이런 영상에 눈과 귀를 막다 보니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내부 영상이나 자료도 점차 끊기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할 말은 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도 햇볕정책의 찬사로 일관했던 통일안보 교육 동영상을 최근 다른 내용으로 바꾸었다.

이젠 방송매체도 북한의 명과 암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길 바란다. 적어도 북한에 티베트만 한 관심이라도 돌린다면, 현실을 미화한 북한 선전매체를 그대로 인용하거나 이를 마치 북한의 참모습인 양 오도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할 말을 분명히 해야 북한이 변한다. 동영상 속의 탈북 여성은 세계를 향해 “살려 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김일성대 졸업·2001년 탈북)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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