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확인증 갖고 가면 공짜입장” 선관위의 ‘空約’

  • 입력 2008년 4월 10일 02시 59분


회사원 성태규(38·서울 잠원동) 씨는 9일 오전 일찌감치 투표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을 찾았다가 황당한 일을 당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처음 도입한 투표확인증이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였기 때문이다.

성 씨뿐 아니라 많은 시민이 이날 서울시내 고궁이나 공영주차장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거나 돈을 내야 했다.

중앙선관위는 투표확인증을 갖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국가 및 시도 지정문화재, 능원·유적, 공영주차장을 가면 이용료 면제 또는 2000원 이하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해 왔다.

그러나 창경궁 관리사무소는 “서울시내 고궁은 투표확인증을 이용할 수 있는 할인대상 시설이 아니다”며 무료입장을 거부했다.

창경궁 입구에는 ‘창경궁은 투표확인증 소지자께서 무료관람하실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창경궁뿐 아니라 서울시내 모든 고궁이 마찬가지였다. 투표확인증에는 할인 혜택을 이달 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과 지방 박물관은 선거일인 9일에만 할인혜택을 줬다.

성 씨는 “할인이라고 해서 일부러 찾아왔는데 막상 와 보니 전혀 쓸모가 없었다. 국민을 상대로 쇼를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선거법상 명시된 할인혜택 대상이 국공립시설에 한정된 데다 고궁의 경우 재정적인 문제로 제외됐다. 박물관 할인기간이 선거 당일로 제한된 이유는 협의과정에서 해당 부처에서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라고 해명했다.

회사원 이유철(43·경기 안양시) 씨는 “그럴 바에는 왜 굳이 투표확인증을 만들어 줬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정책으로 시민만 불편을 겪었다”며 씁쓸해 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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