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이 4일 ‘금고 이상 형(刑) 공천 배제’ 원칙을 밝히자 민주당은 공황 상태에 빠져 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이나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개인 비리 혐의가 짙은 인사는 물론 상당수 당 중진도 공천에서 배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밤 12시를 넘겨 가며 ‘정치 현실’을 앞세워 막판 조율을 시도했지만 박 위원장을 포함한 공심위가 뜻을 굽히지 않아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공심위는 당 지도부가 납득할 만한 대안을 갖고 오지 않으면 회의 자체를 열 수 없다는 방침이다.
▽“물갈이 강행” 통보=박 위원장이 천명한 ‘금고 이상 형 공천 배제’ 원칙은 당 지도부가 주장해 온 ‘예외 인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선이나 총선 과정에서 당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비리에 연루된 인사에 대해서는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는 게 지도부의 요구였지만 박 위원장은 작심한 듯 일괄 배제 원칙을 공론화했다. 그는 “큰일이 있을 때는 억울한 사람의 희생을 딛고 가는 것이 우리 역사다. 자기가 몸소 나와서 희생하는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분위기에 밀려 희생당할 수도 있다”며 대의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전 공심위에서는 고성이 오갈 정도로 격론이 이어졌으며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
공심위는 당 지도부에 “예외를 인정하지 않겠다. 최고위원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추가 회의는 없다”고 최종 통보했다.
박경철 공심위 대변인은 “공심위가 갖고 있는 원칙을 변경할 수 있을 정도로 명분을 갖고 있다면 다시 논의할 수 있다”며 최고위원회에 공을 넘겼다.
당초 공심위원 12명 중 당 추천 인사 5명은 예외 규정 인정을 주장했지만 이날 회의에서 외부 출신 위원들과 어느 정도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갈등 증폭=논란이 확산되자 손학규 박상천 공동대표는 이날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박 위원장을 만나 막판 조율에 나섰다. 하지만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오후 7시와 10시에 최고위원회의를 긴급 소집해 ‘박재승 기준’의 수용 여부와 공심위에 전달할 예외 조항을 논의했다.
한 참석자는 “공심위 원칙은 존중하지만 개인별 차이를 꼼꼼히 따져 판단해 달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좀처럼 이견의 간극을 좁힐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날 당사를 급히 찾은 유인태 최고위원은 “(공심위가) 꽉 막혀 있다. 우리 처지에서는 그걸 받을 수 없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박 위원장의 공천 배제 기준이 알려지자 전화 인터뷰에 응한 탈락 예상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박 전 비서실장은 “나는 개인 비리와 관계없다. 당을 위해 (기업 자금 등을) 사용한 사람은 해당 안 된다고 한다면 나 또한 개인적인 자금 사용이 없었던 만큼 해당 안 된다”고 말했다.
김홍업 의원은 “대통령 가족이어서 (검찰에) 학대받았다는 억울함을 당에 소명했지만 그렇게 판단한다면 어쩔 수 없다”며 억울해했다. 그는 무소속 출마를 묻자 “아직 그걸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용희 국회부의장은 “민주당은 단 1석이 아쉬운데도 나를 배제할 수 있겠는가. 나는 무소속으로 출마하더라도 100% 당선된다”며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통합민주당 주요 공천 신청자들의 비리 내용 및 판결 | |
이름 | 비리내용 및 판결 |
김민석 | SK그룹에서 2억 원 수수.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
김홍업 | 이권청탁 받고 기업체에서 25억 원 수수. 징역 2년 |
박지원 | SK그룹 등에서 1억 원 수수. 징역 3년 |
배기선 | 업체에서 1억3000만 원 수수. 징역 4년(2심) |
설훈 | 이회창 총재 20만 달러 수수설 허위 유포.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
신건 | 국가정보원 불법감청.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
신계륜 | 대부업체로부터 불법자금 3억 원 수수.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
안희정 | 16대 대선 불법자금 4억9000만 원 수수. 징역 1년 |
이상수 | 16대 대선 불법자금 32억 원 수수.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
이용희 |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9500만 원 수수.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
이정일 | 17대 총선 때 상대 후보 불법감청.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
이호웅 | 16대 대선 불법자금 1억5000만 원 수수.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
대법원 계류 중인 배기선 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판결 확정된 뒤 사면 받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