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듯 치밀하게 ‘MB식 협상’

  • 입력 2008년 2월 21일 03시 00분


《진통을 거듭한 정부조직 개편 협상이 20일 전격 타결되면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2·18’ 조각 발표 카드와 그 후 행보가 협상 타결의 결정적 분수령이 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통합민주당 손학규 공동 대표가 이날 오전 9시 반 해양수산부 폐지 수용 의사를 밝히자 일부 당선인 측근들에게서는 “그것 봐라” 하는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이명박 스타일’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 마음 급한데…” 대국민 호소

협상 진행 중 조각발표→국정워크숍 강행

“FTA협상 등엔 정무기능 보완해야” 지적도

한나라당 지도부 일각의 반대에도 조각 발표 카드를 선택한 이 당선인은 협상 타결 전까지 줄곧 ‘이명박식 협상’을 밀어붙였다. 밀고 당기는 전통적 협상보다는, 논의의 스펙트럼을 정치권 밖으로 확장시킨 구체적인 의견 표명과 대국민 호소를 택했다. 이번에도 ‘탈여의도’였다.

이 당선인은 18일 조각 발표 기자회견에서 “국회 논의는 참 지지부진했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했다”며 “세계는 하루하루 경쟁 속에 있는데 우리는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정치권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어 열린 각료 후보자-대통령수석비서관 연석 워크숍에서도 “정치가 그렇게 논리적으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새 정부는) 세계 경제가 어려우니까 준비를 단단히 해서 한국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도 만들고 서민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에 (정부 조직을 슬림화하려고) 마음이 급한데 (조직 개편안이) 매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나가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동시에 △부처 간 장벽 허물기 △정책 집행 전 현장 확인 △글로벌 기준에 따른 각 부처 사무실 재배치 △하루 단위의 정책 집행 시간표 수립 등 매우 구체적인 국정 운용 방침을 내놓으면서 ‘새 장관을 전제로 한 정부 출범’을 기정사실화하는 전략도 구사했다.

협상 결렬 책임론을 놓고 여야 간 대결을 벌이고 있던 19일 오후에는 “난 정말 일하고 싶은 사람이다. 다른 개인적인 욕심은 아무것도 없다”며 평소 즐기지 않는 감성적인 발언도 쏟아냈다.

이후 여론은 ‘조각 파행’ ‘신구(新舊) 동거 정부 우려’ 등 이 당선인이 정치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쪽으로 서서히 형성됐다고 당선인 측은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민주당 손 대표가 20일 전격 회견에 나선 것도 여론을 방치하면 ‘새 정부 발목 잡기’라는 이슈가 4월 총선을 뒤덮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무튼 정치권은 이 당선인이 조각 발표 후 타결 전까지 보여준 각종 전략과 구상이 한동안 새 정부의 대야(對野) 협상 기준이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난마처럼 얽힌 협상 실타래를 자기 방식으로 풀어낸 데 따른 정치적 자신감을 갖게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 당선인은 민주당의 반대로 2월 임시국회 내 처리가 사실상 무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도 ‘이명박답게’ 해결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명박 스타일’의 정치가 계속 먹힐지는 미지수다. 이번 개편안 협상은 4월 총선이라는 결정적 변수가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 측이 더 버티지 못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이번은 운이 좋았다. 당선인 측근들의 정무 기능은 좀 더 보완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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