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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월 23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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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측 “사실상 지역구 절반 요구… 너무 심하다”
朴측 “당선인측과 뒷거래 시도 있을 수 없는일”
오늘 李-朴 회동… 공천갈등 분수령 될 듯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이 지난 주초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에 공천 보장 희망자 88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전달한 것으로 22일 확인되면서 ‘공천 요구 명단’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날 이 당선인 측 관계자는 “박 전 대표 측 중진 의원이 지난 주초 88명의 공천 보장 희망자 명단을 전달했다”고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 중진 의원은 ‘명단에 오른 공천 보장 희망자 중 20%는 의정 활동이나 품행에 문제가 있어 보이니 우리가 자체적으로 교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전날 분당 가능성을 내비친 박 전 대표 측은 본보 보도에 대해 “이 당선인 측이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흘리고 있다”며 흥분했고, 이 당선인 측도 공식적으로는 “명단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20% 자체 물갈이’에도 촉각
공천 요구 명단을 작성한 이 중진 의원은 평소 가깝게 지내는 박 전 대표의 측근 의원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비밀리에 명단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는 이 중진 의원이 사전에 이 당선인 측과 협의해 명단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 당선인 측 관계자는 “그 중진 의원이 먼저 가져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원칙을 강조하는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인 측과 뒷거래를 시도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만약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박 전 대표는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박 전 대표가 이 당선인 측과 공천 갈등을 빚으면서 분당 가능성까지 고민하는 상황에 이르자 이 중진 의원이 ‘총대’를 메고 계파별 공천 안배로 이 당선인 측과 ‘평화협정’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친(親)박근혜 성향의 의원들은 ‘20% 자체 물갈이’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명단을 건넨 중진 의원과 가깝지 않은 인사들은 기자에게 “누가 물갈이 대상이냐”고 묻는 등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현재 박 전 대표 진영에서는 “문제가 있는 5명 이상의 ‘친박 의원’이 물러나야 정치개혁이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투명 공천 주장하더니…”
이 당선인 측의 한 초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겉으로는 계파정치나 지분을 요구하는 구태정치를 안 하겠다며 투명한 공천을 요구해 놓고 이게 뭐하는 것이냐”며 “박 전 대표는 몰랐을 것으로 보지만 측근들의 행태는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 측의 한 인사는 “88석이면 한나라당 지역당원협의회 가운데 호남 쪽을 빼고 나면 사실상 절반에 가까운 수치”라며 “그 대부분이 영남과 충남에 집중됐을 것이란 건 안 봐도 뻔한 것 아니냐. 그러면 우리 쪽은 서울만 갖고 정치하란 얘기냐”고 반발했다.
한 당직자는 “만약 그 명단이 공천 거래를 위해 이 당선인 측의 주문으로 합의 아래 작성된 것이라면 당선인 측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강재섭 대표가 공천 희망자 명단을 만들어 이 당선인 측에 건넸는지도 속히 규명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강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왜 그런 명단을 작성해서 주겠나. 나는 받는 사람이지 주는 사람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중국 특사 방문 성과 설명때 논의할 듯
박 전 대표는 23일 오후 4시 이 당선인과 만나 중국 특사단장으로 4일간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성과에 대해 설명한다.
박 전 대표 측은 당초 서면으로 방중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었지만 임태희 당선인 비서실장과 유정복 의원이 방중 결과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대면 보고로 형식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회동에서 공천 등 정치 현안이 논의될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 회동이 ‘갈등 진정’과 ‘내분 심화’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공식적으로 두 사람은 공천과 관련된 권한이 없기 때문에 논의를 하더라도 비공개로 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 당선인이 이 자리에서 ‘대화합 카드’로 박 전 대표에게 국무총리직을 공식 제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
▼강재섭 “朴 탈당설, 그분에 대한 모욕”
“경선때 마음은 중립 아니었지만 중립 지키려 노력”▼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22일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 구성을 앞두고 당내에서 흘러나오는 박근혜 전 대표의 탈당설에 대해 “그건 그분에 대한 상당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어지러운 대선 정국에서도 마디마디 훌륭한 행보를 보인 사람이 이 상황에 왜 탈당을 하느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강 대표는 논란이 되는 공천 기준에 대해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국민 공천, 경선에서 누구를 밀었느냐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공정 공천, 능력을 보는 실적 공천이 원칙이다. 당 지도부의 품격과 양심을 믿고 맡겨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솔직히 마음은 중립이 아니었지만 행동은 중립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지역구(대구 서) 정서와 성향은 박 전 대표 쪽에 가까웠지만 공정하게 경선을 관리했다는 뜻으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박 전 대표를 모두 의식한 발언이다.
강 대표는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관련해 “경제 살리기와 국민통합,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 국정 정상화와 선진화의 핵심”이라며 “실용적인 보수, 큰 시장·강소정부, 자율과 경쟁, 나눔과 배려라는 가치를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번 총선은 정치 개혁을 완성하는 과정”이라며 “새 정부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 확보가 긴요하다.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와 관련해서는 “(대통합민주신당이) 선배 여당으로서 큰 정치의 도량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이 밖에 강 대표는 △당 경비 10% 절감 △당-정-청이 서로 견제와 소통으로써 책임정치 구현 △금권, 네거티브, 철새정당 선거를 불용하는 3불 선거 △이념과 당략을 배제한 생산적, 경쟁적 여야 관계 등을 약속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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