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 확대하자” 평양도 ‘실용’ 선택

  • 입력 2008년 1월 2일 02시 52분


《북한이 신년 공동사설의 형식을 빌려 남한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첫 ‘메시지’를 던졌다.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10여 일간의 ‘장고(長考)’ 끝에 나온 것이다. 북한이 1일 발표한 2008년 공동사설은 과거와 달리 남한과 미국 등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이 사라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시한에 쫓기는 핵 프로그램 신고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난 속에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및 남한과의 교류협력 확대라는 ‘실리’를 추구하기 위한 실용적인 선택이라는 평가다.》

▽남한 대선 후 첫 공식 반응=북한은 2007년 12월 19일 남한의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된 것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해 왔다. 북한의 ‘의도된 침묵’은 새 당선인에 대한 탐색전으로 풀이됐다.

동국대 고유환 북한학과 교수는 “탐색의 결과 새 정부를 향한 조심스럽지만 강한 관계 유지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동사설은 대선 후 북한 관계자들이 개별적으로 ‘10·4선언’ 이행을 촉구한 발언을 공식화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분야별 주요 내용=북한은 공동사설을 통해 제2차 남북 정상회담 합의인 ‘10·4선언’ 이행에서 나아가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확대를 주문했다.

공동사설은 “북남관계 발전과 통일에 이롭게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하여야 한다”며 “북남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조국통일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게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핵문제와 대미관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 없이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 친선협조 관계를 더욱 강화 발전시켜 나갈 것”며 일반적인 대외정책을 피력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장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며 남조선에서 침략적인 합동 군사연습과 무력증강 책동을 저지시키고 미군 기지들을 철폐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내적으로는 경제 건설을 ‘강성대국’ 건설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과학기술과 대남 및 대외관계 개선에 기반을 둔 경제 건설을 주장했다. 동시에 사상 재무장 및 사회통제 강화 의지도 피력했다.

▽지난해와의 변화 및 북한 의도=제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남한의 정권교체, 6자회담 및 북-미 협상의 순항 등 국내 및 국제정치적 변화를 감안한 듯 지난해 신년 공동사설과 비교할 때 민감한 표현들이 삭제되거나 순화됐다.

핵 실험 직후인 지난해에는 “우리가 핵 억제력을 가지게 된 것은 (중략) 민족사적 경사”라며 핵 실험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올해는 ‘핵 억제력’에 대한 표현이 사라졌다.

북한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반동보수세력은 외세를 등에 업고 매국반역적인 기도와 재집권 야망을 실현해보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의 집권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었다. 올해는 한나라당과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비판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 신년 공동사설이 김일성 주석 출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규정한 것은 군과 주민의 사회적 동원을 정당화하고 동시에 경제건설에 내부 역량을 총집결할 방침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전체적으로는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국내외 정세의 변화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이른바 ‘상황 관리’의 정치에 역점을 두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 당선인 측 반응=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1일 “북한이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현실로,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이 핵 불능화와 성실한 신고를 조속히 이행해 새 정부에서는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인 고려대 남성욱 북한학과 교수는 1월 대북 특사를 파견하고 2월 취임식에 북한 부총리급 인사를 초청하자고 이 당선인에게 건의했다. 그는 또 “10·4선언 이후 190여 개에 이르는 남북 합의 사항을 중요도에 따라 A(합의 이행), B(검토 필요), C(중장기 검토), D(보류) 급으로 분류해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인수위 측은 ‘개인의 견해’라며 “아직 공식 라인에서 구체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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