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안받으면 당선축하금 아니다?

  • 입력 2007년 11월 28일 0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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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견 지켜보는 참모들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성 비자금 특검법’ 수용 의사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과 김병준 정책기획위원장 등 청와대 참모들이 배석해 있다. 김경제 기자
회견 지켜보는 참모들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성 비자금 특검법’ 수용 의사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과 김병준 정책기획위원장 등 청와대 참모들이 배석해 있다. 김경제 기자
■ 盧대통령 ‘당선축하금’ 발언 논란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이른바 ‘당선 축하금’이 포함된 삼성 비자금 특검법에 대해 “대통령 흔들기로 사실 무근인 정치공세”라면서 당선 축하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노 대통령은 “법적으로 당선 축하금이란 개념은 없는 것”이라며 “보편적 개념이라든지, 상식적으로 당선 축하금이라고 하면 대통령이 받아야 당선 축하금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법적 측면에서만 보면 노 대통령의 논리가 맞다. 당선 축하금이란 법적 용어는 없는 데다 대통령 자신이 직접 받았다면 법적으로 뇌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24일 경남 합천 해인사 법회에서 노 대통령이 “저는 당선 축하금 안 받았거든요”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측근들이 이미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던 전례가 있다’고 지적하자 “대통령이 받아야 당선 축하금 아니냐. 개념상 차이는 구분해 줘야 한다”고 강조한 뒤 “물론 측근이나 청와대 참모가 돈을 받았다면 저도 수사 대상은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옛날에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가 많이 있었다. 많이 받아 왔으니까 그때처럼 하겠다. 똑같이 법대로, 양심껏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2003, 2004년 검찰이 대통령 측근 비리와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노 대통령 측근들이 받았던 돈과 노 대통령의 ‘연결고리’를 집중 조사했던 사실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선자금 출구조사를 2003년 당시 얼마나 철저하게 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당선 축하금 같은 의혹을 제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의 논리를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그동안 노 대통령의 측근 비리 수사 때 불거진 당선 축하금 의혹만 놓고 보더라도 과연 대통령이 ‘책임 없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 기업들이 대선 이후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측근들만을 보고 거액의 돈을 줬겠느냐는 의구심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최근 당선 축하금으로 의심되는 삼성의 양도성예금증서(CD) 일련번호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 한 변호사는 “측근들이 받은 것과 대통령 자신이 직접 받은 것을 구분해 대통령이 ‘나는 안 받았으니 결백하다’고 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온당치 않은 태도”라고 지적했다.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은 대선 직후인 2002년 12월 26일 SK그룹에서 ‘당선 축하금’ 명목으로 11억 원을 받았다. 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수행팀장을 지낸 여택수 전 대통령제1부속실 행정관이 2003년 8월 롯데쇼핑에서 받은 3억 원도 당선 축하금 성격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검찰은 여 전 행정관 수사 때 노 대통령이 여 전 행정관의 금품 수수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를 집중 추궁했다.

측근 비리 수사에서 최 전 비서관, 여 전 행정관, 노 대통령의 386 최측근인 안희정 씨 등 노 대통령 측근들이 대선 이후 수수한 돈은 20억4300만 원으로 밝혀졌다. 당시 검찰 수사팀은 엄격하게 해석하면 이 돈은 대선 후 받은 당선 축하금 성격이 강해 대선자금과는 분리해야 한다고 했었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검찰 조사조차 받지 않은 것은 ‘대통령은 재임 중 형사소추에서 면제된다’는 헌법 규정에 따른 것”이라며 “기소 대상에서 제외되는 만큼 당연히 기소의 사전 단계인 조사 자체도 이뤄질 수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 정치권 반응

이명박 “특검이 새 발전 계기 되길”

昌캠프 “정략적 의도 용납지 않을것”

정동영 “대통령, 국회권한 존중해야”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삼성비자금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해 각 정당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특검법안을 수용하면서도 “국회의원들의 횡포”라며 불만을 표시한 데 대해 한나라당 등은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는 “특검으로 진실이 밝혀지고, 특검이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대통령 흔들기’ 운운한 것은 어이가 없다”며 “결백하다면 사족을 달 필요 없이 수사결과를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대선 후보는 “특검을 통해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고 사회 투명도도 진일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후보는 노 대통령의 국회 비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국회의 결정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국회의 권한을 존중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특검이 대기업의 전근대적 경영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노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 측에 전달된 불법 대선자금도 밝혀져야 한다”며 “특검법을 수용하려면 깨끗하게 수용해야 하는데 노 대통령은 대통령답지도, 남자답지도 않은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선거대책위원회 박용진 대변인은 “특검 도입에 거부감을 드러내던 노 대통령이 국민의 진실 규명 의지 앞에 무릎 꿇었다. 이번 특검은 ‘이건희 특검’이자 ‘노무현 특검’이다”라고 말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 측은 2002년 대선자금 문제에 대한 특검 수사가 이뤄지는 데 대해 떨떠름한 분위기였다. 이 후보가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기 때문에 대선자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후보 측 강삼재 전략기획팀장은 “법 절차에 따라 사건을 조사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정략적 의도나 당파적 이익에 따라 사건을 조사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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