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미소’ 김정일 표정 하루만에 급변 왜

  • 입력 2007년 10월 4일 03시 02분


코멘트
환해진 둘째날3일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노 대통령이 왼팔을 가볍게 잡자 김 위원장이 전날보다 훨씬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평양=연합뉴스
환해진 둘째날
3일 오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노 대통령이 왼팔을 가볍게 잡자 김 위원장이 전날보다 훨씬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평양=연합뉴스
남북 정상회담 첫날인 2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무표정한 얼굴과 의례적인 행동으로 일관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일 미소를 띠고 손짓을 하는 등 표정과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김 위원장이 하루 만에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웃으며 고개도 끄덕여=이날 오전 첫 정상회담을 위해 노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을 찾은 김 위원장은 영빈관 입구에서 회담 장소까지 노 대통령과 함께 걸어가며 환담을 하는 동안 수차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 대통령과 옷깃이 스칠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따금 손짓을 섞어 가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영빈관 안에서 기념촬영을 할 때는 서로 가운데 자리에 서라며 ‘양보’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 위원장은 회담에 앞서 노 대통령이 준비해 온 병풍 선물을 직접 만져 보며 관심을 표시하기도 했고 선물에 대해 “감사합니다”라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노 대통령의 육로 방북에 대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로로 오셔서 큰 의미가 있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불과 하루 전 4·25문화회관 앞 광장에서 노 대통령을 영접할 때만 해도 줄곧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의전 행사가 진행될 때도 노 대통령과 다소 떨어져 걸었고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왜 태도 바꿨나=먼저 김 위원장이 2일 보여 준 무표정하고 의례적인 행동에 대해 남한 언론과 외신이 건강상 문제가 있어 보인다거나 김 위원장이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해 남한에 ‘불만’이 있는 것 같다고 보도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무표정한 모습과 소극적인 행동이 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태도를 바꿨을 수 있다는 것.

김 위원장은 평소 자신과 북한에 대한 남한의 언론 보도를 자세히 살펴본 뒤 사안에 따라 대응책을 마련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2000년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어제 남쪽 TV 오랫동안 봤습니다. 특히 실향민 탈북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번 기회에 고향 소식이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속을 태우는 것 같습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일부러 딱딱한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을 영접할 때 다소 구부정하고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 건강이 좋지 않거나 최근 피로가 쌓인 것이 일시적으로 드러난 것일 가능성도 있다.

현 정부가 2000년 정상회담 당시 이뤄진 대북송금 사건에 대해 특별검사를 도입해 수사한 것에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내부 단속용?=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터넷의 발달로 갈수록 힘들어지는 북한 내부 단속을 위해 ‘준엄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 것이라는 외신 보도도 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3일 북한 문제 전문가인 브라이언 마이어스 교수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의 2일 행동과 표정은 매우 이례적이며, 그의 무표정함은 북한의 독재 정권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마이어스 교수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북한 내에서 유통되는 정보를 예전처럼 완벽하게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절감하고 있다는 것. 북한 주민들이 밀수된 TV로 남한 방송을 몰래 보거나 인터넷을 통해 바깥 소식을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어스 교수는 “김 위원장은 정보 통제 체계가 붕괴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상회담 버전을 시차를 두고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용으로 보여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자신임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준엄하고 노 대통령을 무시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화보]한층 밝아진 김 위원장…1차 정상회담
[화보]평양 아침 출근길 시민들 모습

[화보]노무현 대통령 내외 옥류관 만찬
[화보]능라도 5.1 경기장에서 펼쳐진 아리랑 공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