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언론 대못질’]제1부<12>‘맹탕 브리핑’

  • 입력 2007년 9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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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외면받는 브리핑 지난달 29일 외교통상부는 출입기자단이 정부의 취재 통제안에 반대해 새로 마련된 1층 브리핑룸에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석방’에 대한 브리핑을 강행했다. 이날 브리핑에는 외신기자 몇 명만 참석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기자들 외면받는 브리핑 지난달 29일 외교통상부는 출입기자단이 정부의 취재 통제안에 반대해 새로 마련된 1층 브리핑룸에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석방’에 대한 브리핑을 강행했다. 이날 브리핑에는 외신기자 몇 명만 참석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재정경제부가 7월 16일부터 시범 운영 중인 ‘온라인 질의응답 서비스’ 화면. 운영 첫날 올린 2개의 질문 외에는 추가 질의응답이 없을 정도로 기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재정경제부가 7월 16일부터 시범 운영 중인 ‘온라인 질의응답 서비스’ 화면. 운영 첫날 올린 2개의 질문 외에는 추가 질의응답이 없을 정도로 기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사례1

국방부는 6월 1일 미국이 강원 춘천시의 캠프 페이지 등 주한미군 9개 기지를 한국 정부에 반환하는 절차가 5월 31일로 마무리됐다는 브리핑을 했다. 당시 미군기지의 토양 오염과 치유 비용이 현안이었기 때문에 기자들의 관심은 반환된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실태와 치유에 집중됐다.

하지만 배포된 2장짜리 보도 자료는 물론 브리핑에 나선 국방부 당국자의 입을 통해서도 ‘국민적 관심사’는 해소되지 못했다. 환경오염 실태와 치유에 대해 질문이 쏟아지자 국방부 당국자는 “환경부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피해 나갔다.

이날 오후 갑작스럽게 열린 환경부 브리핑도 마찬가지. 1장짜리 보도 자료는 앞서 배포된 국방부 보도 자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염 실태와 치유 비용에 대한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환경부 당국자는 “말할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사례2

건설교통부는 6월 5일 정례 브리핑에서 신규 제작 자동차의 실내 공기 질(質)에 대한 권고 기준을 제정한다는 내용의 자료를 내고 설명을 했다. 하지만 이 건은 건교부가 작년 말에 홍보했던 내용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브리핑은 건교부 당국자가 자료를 읽는 것으로 끝났고 기자들의 질문도 없었다.

이날 건교부 브리핑은 정부가 6월 1일 ‘강남 대체’ 신도시로 경기 동탄신도시를 확대 개발한다고 발표한 이후 4일 만에 열린 정례 브리핑이었다. 당연히 기자들의 관심은 신도시의 개발 추진 과정에 집중돼 있었지만 관련 당국자들은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았다. 건교부는 엉뚱한 보도 자료 한 건으로 정례 브리핑을 때운 셈이었다.》

정부는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도입하면서 각 부처의 공식 브리핑을 통해 정보를 충실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 부처들의 브리핑은 알맹이 없는 ‘맹탕 브리핑’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브리핑은 국민의 관심과 동떨어진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거나 민간의 정책 비판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가 되고 있다. 정작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나 곤란한 주제에 대해선 답변을 피하거나 아예 브리핑을 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 민감한 주제에는 ‘모르쇠’

2월 8일 한미 쇠고기 수입 검역 관련 기술협의가 열렸다. 양국 간 수입 위생 조건을 논의하는 자리로 향후 미국 쇠고기 수입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회의였다.

농림부는 협의 결과에 대한 브리핑을 하며 자료를 배포했지만 ‘회의가 열렸다. 합의를 보지 못했다’는 요지의 딱 두 문장이 전부였다. 그나마 브리핑은 회의가 끝난 당일이 아닌 그 다음 날에서야 열렸다.

제21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며칠 뒤인 6월 7일 통일부 브리핑이 열렸다. 기자들의 관심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하지만 브리핑에 나선 신언상 당시 통일부 차관은 “남북관계가 큰 틀에서는 별 문제없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남북관계의 문제는 무엇이고 정부가 생각하는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자들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물론 정부 부처의 모든 브리핑이 이처럼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부실한 내용으로 진행돼 기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 송외교 8주째 정례 브리핑 안 해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7월 11일 마지막 브리핑을 끝으로 8주째 내외신 정례 브리핑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장관이 일주일에 한 번 나서는 정례 브리핑은 외교부의 공식 방침이 나오는 거의 유일한 창구다.

해외 출장 등으로 불가피한 경우도 있지만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를 들어 정례 브리핑을 취소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에는 사전 양해조차 구하지 않아 송 장관의 브리핑을 듣기 위해 모여 있던 기자들에게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장관 또는 차관이 브리핑을 기피하는 정부 부처도 적지 않다. 기자들로서는 책임 있는 답변이나 설명을 들을 수 없으니 그만큼 브리핑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이 기획예산처 등 18부 1처 5청의 브리핑 실적을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올해 들어 8월까지 장차관 또는 청장이 정례 브리핑을 한 번도 실시하지 않은 부처 및 외청(外廳)이 7곳이나 됐다.

○ 배경 설명 브리핑도 거의 없어

방송 카메라나 녹음기 없이 정책 당국자들이 허심탄회하게 기자실에 내려와 정책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실시하는 부처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정경제부의 경우 1, 2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한두 차례 백그라운드 브리핑이 진행돼 기자들이 정책 당국자들의 솔직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7월 이후 현재까지 2개월여 동안 재경부의 백그라운드 브리핑은 한두 차례에 불과했다.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서조차 백그라운드 브리핑이나 중간 브리핑이 거의 없었다.

정부가 엉터리 재정 통계를 발표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이달 7일 알려졌지만 핵심 소관부처인 기획예산처는 아직 공식 브리핑은커녕 백그라운드 브리핑조차 하지 않았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28억 들인 전자브리핑도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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