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통합론 ‘盧心 vs 老心’ 충돌

  • 입력 2007년 6월 14일 03시 08분


코멘트
지난해 6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노벨 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 오찬 자리에 나란히 참석했던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김대중 전 대통령.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6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노벨 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 오찬 자리에 나란히 참석했던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김대중 전 대통령. 동아일보 자료 사진
범여권 통합 방법을 둘러싸고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중심론’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민주당 중심론’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13일 “현 대통령은 민주당이 중심이 돼 당선시킨 대통령”이라며 “민주당 중심으로 다음 후보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는 이날 남북정상회담 7주년을 맞아 SBS와 가진 대담에서 “일부에서는 여권의 통합을 놓고 ‘도로민주당이다. 지역주의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는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어느 특정 지역에서 강세였지만 다른 지역 사람을 배척한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보면 야당도 특정 지역에서 아주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물론 “민주당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여권이 한나라당과 경합하려면 하나로 뭉쳐 게임다운 게임을 하는 것이 정치의 멋이다”며 통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발언 문맥은 분명 통합 문제에 있어서 노 대통령과 다른 인식을 거듭 드러낸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전통적 지지층의 복원과 대통합을 강조해 왔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호남 지지층의 결집을 바탕으로 충청권과 연대해 ‘서부벨트’를 복원하고 햇볕정책 지지 세력을 한데 모으자는 게 DJ식 통합론의 실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반면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탈당파들과 민주당의 통합 움직임을 “지역주의로의 회귀 아니냐”면서 ‘열린우리당 중심론’을 피력해 왔다. ‘DJ 노선’과 ‘노무현 노선’은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DJ 노선을 노골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그는 “97년에 이기니까 호남 충청 손잡아 이겼다는 공식을 갖고 있는데, 전자계산기로 두드려보면 이인제 씨가 동쪽에서 500만 표를 깨주지 않았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기지 못하는 것 아니냐. 이인제 씨가 또 있느냐”(8일 원광대 특강), “수구세력에게 이겨야 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지역주의를 부활시켜서는 안 된다”(10일 6월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인식의 근저에는 ‘호남 기반’의 DJ 노선에 끌려 다니다가는 자신의 ‘영남 기반’이 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무조건 해체에 반대하고 참여정부평가포럼과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등의 세력화에 나선 것도 같은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이 DJ의 햇볕정책을 평가하며 호남권에서의 지지 확산을 노리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 대해 “손 전 지사가 왜 범여권 후보냐”며 연일 비난하는 것도 그런 힘겨루기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따라서 범여권 진로의 주요 변수 중 하나는 DJ 노선과 노무현 노선의 긴장관계가 어떻게 정리되느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범여권에선 두 사람의 공조 가능성과 결별설이 공존하고 있다.

통합파들은 두 사람의 노선이 수렴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DJ와 노 대통령이 서로 양해할 수 있는 후보를 내세울 것으로 보고 있다. DJ정부와 현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행보가 주목을 끄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일각에선 남북정상회담이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이 뜻을 모을 수 있는 카드라는 전망이 나온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햇볕정책을 계승하면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대선구도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DJ는 북핵 6자회담과 무관하게 8·15 이전에 남북정상회담을 할 것을 적극 주장하고 있는 반면 노 대통령은 6자회담 진행 상황을 보아가며 하자는 쪽이어서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다.

DJ와 노 대통령이 언제까지 힘겨루기를 계속할지, 결국 큰 틀에서 합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 사람은 대선, 혹은 대선 이후 총선까지를 내다보며 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한 초선 의원은 “DJ와 노 대통령은 큰 틀에서 한길을 갈 수밖에 없지만 대선후보 선출에 직접 개입하면 큰 사단이 벌어질 것이다”라고 했다. 역시 탈당파인 한 재선 의원은 “DJ 노선과 노무현 노선은 물과 기름의 관계다. 한 번은 합칠 수 있었지만 두 번은 어렵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