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원장, 이례적인 ‘뒤집기 캐스팅 보트’

  • 입력 2007년 6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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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이종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법제실장(왼쪽)과 손기식 사법연수원장이 7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위원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특강 발언이 공직선거법 위반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전체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과천=홍진환 기자
숙의
이종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법제실장(왼쪽)과 손기식 사법연수원장이 7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위원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특강 발언이 공직선거법 위반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전체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과천=홍진환 기자
■ ‘선거운동은 아니다’ 선관위 표결 과정 논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7일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강연에 대해 전체적으로는 선거법 위반에 무게를 실으면서도 실제적 제어 조치는 없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노 대통령의 연설이 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 금지 조항이나 공무원의 선거운동 금지 조항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결정은 ‘교묘하다’는 게 학계와 법조계의 평가다. 선관위원들의 의견이 ‘4 대 3’으로 위반이 우세했다가 ‘4 대 4’로 바뀐 데 이어 결국 ‘위반 아님’으로 결정된 데 대해서는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지나치게 대통령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뒤집힌 결론=노 대통령의 연설이 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 금지 조항이나 공무원의 선거운동 금지 조항을 위반했는지에 대해 출석한 선관위원 8명(대통령 임명 몫인 임재경 위원은 일본 출장 중이어서 불참)은 당초 4 대 3으로 ‘위반’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이란 선거가 특정됐고 △한나라당 후보들이 사실상 후보자로서 인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끔찍하다”며 한나라당의 집권에 반대하는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는 점에서 선거운동에 해당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는 것.

그러나 출석(8명) 과반이 안 돼 고현철 위원장이 표결에 참여해 ‘위반이 아니다’ 쪽에 합류함으로써 4 대 4로 가부 동수가 됐다. 그러자 고 위원장이 결정권(캐스팅 보트)을 행사해 ‘위반이 아니다’로 결정이 났다고 한다.

강경근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선관위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라며 “권력에 휘둘린다는 인상을 줘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일반인이라면 형사 처벌감=선관위는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나왔다는 데 방점을 찍어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일반인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해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난한다면 선거운동이냐, 아니냐에 구애받지 않고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특히 사전선거운동은 처벌이 무겁다. 물론 일반인이 노 대통령처럼 대중 집회 등을 통해 비방할 수는 없겠지만,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난의 글을 인터넷 등에 게시한다면 처벌된다.

한상희(건국대 교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은 “선관위가 사전선거운동 금지 위반에 대해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했다”며 “특정 정당을 찍어 주지 말라고 하고, 특정 후보를 비판한 것이 명백한 만큼 검찰 고발까지는 아니더라도 경고나 주의는 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조승수 전 민주노동당 의원의 의원직 상실에 비춰 볼 때도 이번 결정이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비판한다.

조 전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 법정 선거운동 시작 하루 전 지역 주민들의 집회에 참석해 “지역 현안인 음식물 자원화 시설 건립에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가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됐고, 대법원은 당선 무효형을 확정했다.

조 전 의원의 발언은 노 대통령처럼 선거운동 시작 전에 이뤄졌지만 상대 후보나 상대 당을 비방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은 가중 처벌도 예외=공무원의 중립 의무 위반에 따른 처벌 조항은 없다. 의무를 잘 준수해 달라고 협조 공문을 보내는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이런 공문으로 노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다. 노 대통령은 벌써 세 번이나 선관위의 경고를 받았다. 이번 법 위반 내용도 2004년 탄핵심판 때와 똑같다. 당시에도 선관위는 대통령이 선거법 9조를 위반했다고 결정했다.

선거운동 금지 위반을 판단함에 있어서 위반의 ‘계속성’ ‘반복성’을 주요 판단 준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똑같은 위법을 되풀이하고, 처벌받지 않는 현실을 국민이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한 검사는 “단순 절도범도 재범이나 상습범일 경우엔 가중 처벌로 무기 또는 6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며 “대통령은 되고, 국민은 안 된다면 국민이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선관위장이 표결권에 결정권까지 행사 ▼

이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전체회의에서 고현철 위원장은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운동 위반 여부에 대한 결과를 뒤바꿨다.

노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발언이 선거운동금지 및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4 대 3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고 위원장이 ‘선거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표결해 4 대 4를 만들었다. 고 위원장은 이어 가부동수 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해 노 대통령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다.

위원장이 표결권에 이어 결정권을 행사해 대세를 뒤집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선관위 측의 설명이다.

이석연 변호사는 “대법원의 경우 전원합의체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대법원장은 다수의 판단에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면서 고 위원장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고 위원장이 선거법 위반 결정을 내렸을 경우 노 대통령은 검찰에 고발됐을 가능성이 높다. 선거법 254조(사전선거운동기간 위반죄)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검찰에 고발되더라도 임기 중에는 소추를 받지 않지만 퇴직 후에는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한다.

서울행정법원장, 서울지법원장 등을 거쳐 현재 대법관인 고 위원장은 2006년 10월 손지열 전 위원장의 사퇴에 따라 이용훈 대법원장 지명으로 선관위원이 된 뒤 위원장에 선출됐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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