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회장 보복폭행 의혹 수사 외압 논란

  • 입력 2007년 5월 2일 03시 01분


김승연 회장 집 압수수색‘그날 밤 이 옷을 입었던 걸까?’ 1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집을 압수수색한 수사관들이 정원에서 옷가지를 확인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김승연 회장 집 압수수색
‘그날 밤 이 옷을 입었던 걸까?’ 1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집을 압수수색한 수사관들이 정원에서 옷가지를 확인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의혹 사건에 대해 청와대가 두 차례나 견해를 표명하자 경찰 수사가 청와대의 입김을 받아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당초 첩보를 입수하고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다 청와대의 발언 이후 수사를 너무 서두르면서 뚜렷한 증거 없이 관련 당사자들의 주장만 있는 수사로 끝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 청와대의 부적절한 발언

청와대는 김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이 여론의 관심사로 떠오른 직후인 지난달 27일 “일일상황점검회의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의혹 없이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김 회장이 경찰에 출두한 뒤인 지난달 30일에는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자세히 지켜보고 있다”(천호선 청와대 대변인)라고 발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언론에서 관심을 표명하고, 출입기자들이 묻고 하니까 원론적인 방침을 밝힌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받아들이는 경찰의 분위기는 다르다.

청와대의 기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경찰은 수사의 성과물을 얻어내기 위해 총력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이번 사건에 대해 “언론 보도 이후에 처음 인지했다”고 밝힌 것도 의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이 3월에 이미 이번 사건의 첩보를 보고받은 만큼 어떤 형태로든 청와대에 보고가 됐을 개연성이 높다. 특히 사건의 당사자가 대기업 회장인 만큼 첩보 차원에서라도 청와대에 우선 보고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경찰의 정보 보고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직접 청와대로 보고되는 것이 아니라 상급 관청인 경찰청을 거쳐 보고되는데 서울경찰청이 경찰청에 올리지 않은 내용은 청와대로 보고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 ‘늑장수사’가 ‘과속수사’로

1일 김 회장 집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보안이 유지되지 않아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이뤄지는 흔치 않은 일까지 벌어졌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압수수색은 그 사실이 미리 알려지면 취소할 정도로 보안이 생명”이라며 “압수수색 대상과 장소가 사전에 알려진다는 건 당사자에게 미리 준비를 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 회장 소환도 너무 빨랐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많다. 경찰이 피해자들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챙기지도 않은 채 청와대의 언급 이후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핵심 피의자를 소환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

일선 경찰서의 한 강력팀장은 “상대가 저명인사인 데다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만큼 좀 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나서 소환 조사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피의자에 대한 아무런 압박 수단도 없이 급한 마음에 ‘대질신문을 하면 뭔가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수사의 수순(手順)을 어겼다는 것.

경찰이 사건 현장에 줄곧 있었던 김 회장 아들 친구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하지 않은 것도 결정적인 실수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미 김 회장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아들 친구를 불러 봤자 객관적인 진술을 받아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수사도 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김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신청 방침을 밝힌 것도 문제. 김 회장이 자신의 진술조서에 도장도 찍기 전에 경찰의 한 간부는 기자들에게 김 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고 밝힌 것은 미리 결론을 내놓고 ‘짜 맞추기’ 수사를 한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또 지난달 30일 이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 회장이 쇠파이프로 직접 때렸다는 진술이 나왔다”는 등 구체적인 피의 사실을 공개했다. 당사자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데다 아직 혐의를 입증할 객관적 물증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해자의 일방적 주장을 토대로 혐의 사실을 공표한 것.

공교롭게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의 피의자 인권 보호를 대폭 강화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날, 경찰이 이를 어긴 것.

자칫 명예훼손이나 인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켜 전체 수사의 공정성이 무력화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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