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직장장이 모든 작업 지시… 인사에도 개입 ‘자율 훼손’

  • 입력 2007년 4월 25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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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의류공장에서 북측 직원들이 옷을 만들고 있다. 개성=김경제  기자
24일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의류공장에서 북측 직원들이 옷을 만들고 있다. 개성=김경제 기자
■ 개성공단 입주 남한공장 실태

“개성공단은 중소기업의 미래이고 남북을 이어 주는 평화산업의 핵심이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23일 ‘한반도 경제공동체 실현과 개성공단’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성공단은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할 활로를 열어 국내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남북 경제를 연결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성공단에서 현재 공장을 가동하는 22개 기업 대부분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개성공단의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게 사실이다.

남북경협을 연구하는 시민단체인 남북포럼이 최근 개성공단 입주 15개 기업의 불만 사항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경영 자율성 제약 △안정적인 인력 수급 미흡 △기업 문화 차이로 인한 근로자 관리 문제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장 제도로 경영 자율성 제약=개성공단엔 남측의 법인장 또는 공장장 외에 북측 근로자들을 대표하는 직장장이 있다.

문제는 북측 근로자들에게 직장장을 통해서만 작업 지시를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조사 대상 기업 15개 가운데 9개는 직장장 제도가 경영 자율성을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북측 근로자들은 직장장을 통하지 않으면 칸막이 설치나 세차 같은 간단한 작업 지시에도 응하지 않고 있어 효율적인 경영이 어렵다는 것.

실제로 M기업은 최근 납품일이 다 되도록 생산량을 맞추지 못해 연장근무를 요청했지만 직장장이 거절해 결국 납품 기일을 지키지 못했다.

또 T기업의 경우 최근 북측 직장장이 188명의 업무를 임의로 변경하고 직원 평가와 승진 심사에 개입하는 등 경영에 직접 개입하기도 했다. 북측 직장장은 특히 전체 근로자의 3분에 1에 대해 인사를 단행하면서 남측 법인장의 허가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안정적 인력 수급 필요=북측 근로자의 고용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이 북측에 자격 등을 제시해 요청한 뒤 북측 인력알선 기관으로부터 희망 채용 인원의 1.5배수를 추천받아 선별적으로 고용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도 많았다.

P기업은 1300명의 근로자를 요청했으나 북측이 600여 명만 추천하는 바람에 한동안 공장을 부분적으로 가동해야 했다.

그렇지만 입주 기업들은 북측 인력알선 기관에 인력 채용을 의존해야 하고, 근로자 해고 역시 북측과의 협의를 필요로 하고 있어 능력이 모자라는 근로자를 마음대로 교체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잦은 결근, 무단 조퇴로 생산 차질=남측과는 다른 기업 문화로 북측 근로자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도 많다.

공동 생산과 배급이라는 북한 체제의 특성으로 인한 근무태만이 입주 기업들의 가장 큰 불만이다.

S기업의 경우 근로자들의 결근율이 7∼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조사 대상 15개 가운데 4개 기업은 북측 근로자들의 무단결근과 조퇴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밝혔다.

매일 아침 북측 직장장 또는 조장, 반장이 전체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1시간 반가량 일종의 조회인 ‘총화’ 시간을 갖고, 퇴근시간 30분 전부터 퇴근 준비를 하는 것이 관행으로 돼 있는 것도 남측 기업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북측 기업의 문화다.

일부 기업은 이 같은 북측 기업의 문화 때문에 실제 근로자들의 근무시간은 주간 근무시간인 48시간은커녕 40시간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무단결근과 조퇴 등 근무태만으로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이들 북측 근로자에 대한 처벌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채용과 해고는 물론 상벌 규정 역시 입주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입주 기업 관계자는 “근무태만을 지적하면 북측 직장장을 통해 인권모독이라고 주장해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근무태만은 기업의 생산성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상벌 규정에 대해 입주 업체가 자율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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