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통치자금 보안 묘책 찾는 듯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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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 95주년을 맞아 인민군 부대가 15일 평양 만수대에서 김일성 동상을 향해 경례하고 있다. 평양=신화 연합뉴스
북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 95주년을 맞아 인민군 부대가 15일 평양 만수대에서 김일성 동상을 향해 경례하고 있다. 평양=신화 연합뉴스
‘BDA계좌 해제’ 1주일…北 왜 시간 끄나

북한이 영변 핵시설폐쇄(shutdown)를 위한 준비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6자회담 2·13합의의 폐쇄 이행 시한(14일)을 넘긴 16일까지도 가시적인 폐쇄 조치를 취하지 않아 궁금증을 낳고 있다.

미국은 지난주 초 북한이 평북 영변 지역에서 5MW 원자로와 핵 재처리시설 등의 폐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는 징후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미국은 10일 재무부 성명을 통해 마카오 당국이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동결 자금을 해제할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북한이 즉각 핵 시설 폐쇄 조치에 돌입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을 초청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저버렸다. 표면적인 이유는 BDA은행에 동결됐던 2500만 달러를 인출, 송금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 재무부의 동결 해제 발표 후 1주일이 다 돼 가도록 정작 자금 인출이나 송금을 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시간 벌기 전술인가=지난 주말 한국 미국 중국의 정부 관계자들이 일제히 ‘하루 이틀’ 내지 ‘며칠’을 기다리자고 한 것은 바로 북한의 핵 시설 폐쇄 준비 움직임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북 영변 지역의 일거수일투족이 미국의 위성사진 등에 의해 체크되는 것을 잘 아는 북한이 곧 본격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내기 위해 핵 시설 폐쇄 준비 움직임을 보였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핵 시설 폐쇄 시한을 넘긴 북한을 비난하거나 압박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선 북한이 더는 BDA은행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핵 시설 폐쇄 조치를 이행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폐쇄 조치 돌입 및 IAEA 사찰관 초청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많다. 북한이 BDA은행 문제를 뜻대로 풀어 나갈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핵 시설 폐쇄 준비 움직임을 보여 미국이 강하게 나올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은행 계좌 바라나=북한이 시간을 끄는 이유는 미국을 압박해 BDA은행 대신 국제 금융거래가 가능한 다른 은행에 새로운 계좌를 개설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국제 금융거래에는 달러화 송금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선 미국 금융기관을 거치는 송금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BDA은행은 ‘돈세탁 은행’으로 지정되면서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중단됐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가 가능한 새로운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야 할 필요를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이 미국 내 금융기관에 계좌를 개설하길 희망하고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가 지정 해제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통치자금 보안 유지 원하나=북한이 시간을 끄는 이유는 BDA은행에 동결됐던 자금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인 것과 무관치 않을 개연성이 크다.

북한은 BDA은행 자금을 회수해 다른 국제 금융기관과 거래를 재개하더라도 이들 금융기관이 북한 자금을 철저하게 추적하는 등 종전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김 위원장의 통치자금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을 우려할 수 있다. 이 때문에 BDA은행 자금 인출 및 송금에 앞서 통치자금의 보안을 유지하면서 금융거래를 재개할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한편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 내 유일한 외국계 은행인 대동신용은행은 16일 BDA은행의 북한 자금 중 자신들의 예금 700만 달러의 이체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었다.

북한이 대동신용은행을 통해 BDA은행의 북한 자금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지를 확인하려고 나섰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미국 중국 등은 이 같은 송금 시도가 북한 당국과 연계됐다는 단서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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