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없이 가버린 北… 핵폐기 일정 먹구름

  • 입력 2007년 3월 2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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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혹스러운 힐 북핵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22일 숙소인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 도중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곤혹스러운 힐
북핵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22일 숙소인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 도중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떠나는 김계관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22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평양행 항공기 탑승에 앞서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떠나는 김계관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22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평양행 항공기 탑승에 앞서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 6자회담 파행 끝 종료

6자회담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자금 문제로 파행을 거듭하다 22일 결국 소득 없이 끝났다.

회담의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BDA은행에 동결됐던 2500만 달러를 손에 넣기 전에는 비핵화 논의를 할 수 없다며 이날 돌연 귀국했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첫 단계인 핵 시설 폐쇄도 하기 전부터 회담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에 비춰볼 때 핵 프로그램 신고, 핵 시설 불능화는 물론 최종 목표인 핵 물질 및 핵무기의 폐기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의 노력 팽개친 북한=미국은 21일 밤부터 22일 오전 2시경까지 중국은행 측을 상대로 북한의 자금 입금을 허용하도록 설득했다.

주중 미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미 재무부 관계자가 중국은행 관계자를 만나 ‘BDA은행의 북한 자금 입금을 허용해도 미 재무부는 문제를 삼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BDA은행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거래 등 불법 활동을 통해 조성된 것으로 의심이 되는 자금이 있지만 눈을 감아주겠다고 한 것이다.

중국 정부도 중국은행 측에 입금 허용을 종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은행은 국제 금융시장의 시선을 의식해 자금 입금은 허용할 수 없으나 BDA은행이 북한 자금을 제3국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중국은행을 경유하는 것은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했다.

BDA은행에 50개 북한 계좌를 개설한 당사자들 명의의 송금신청서를 제출하는 문제는 이날 오전 해결됐다. 이에 따라 북한은 평양의 은행 등 입금이 가능한 다른 은행을 지정해 중국은행을 경유한 자금을 받거나, 직접 BDA은행에서 2500만 달러를 현금으로 찾을 수 있게 됐다.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은 이날 중국은행을 경유한 북한 자금을 우리은행 개성공단 지점을 통해 북한에 전달하는 방안을 한국 측과 상의했으나 “한국 측이 매우 신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의 6자회담 당국자는 “중국 측이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머나먼 핵 폐기=BDA은행의 북한 자금 해제는 비핵화의 첫 단계인 핵 시설 폐쇄를 보장하지 못한다. 폐쇄를 위해선 한국이 제공하는 중유 5만 t이 북한 측에 전달돼야 한다.

폐쇄가 이뤄지더라도 그 다음 조치인 핵 프로그램 신고와 핵 시설 불능화에 도달하기 위해선 수많은 단계가 남아 있다.

북한은 신고와 불능화의 대가로 중유 95만 t에 상당하는 경제, 에너지, 인도적 지원 외에 북-미관계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테러리스트 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제외 등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미 행정부와 의회의 관계 등 미국 국내 정치시스템과 얽혀 있어 BDA은행의 자금 해제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하다.

김 부상이 이번에 말도 없이 귀국한 점에 비춰 북한은 북-미관계 정상화 조치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조금만 비위에 거슬리면 언제든 회담을 보이콧하면서 비핵화 조치를 지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북한은 정권 유지의 안전판으로 생각하는 핵무기의 폐기 과정에서 더욱 큰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회담을 엉망으로 만들 개연성이 있다.

이번 6자회담은 결국 2·13합의만 갖고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해 장밋빛 낙관을 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점을 실증적으로 확인시켜 준 셈이다.

베이징=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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