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HEU 진실게임’ 예고

  • 입력 2007년 2월 21일 02시 58분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보유를 시인하는 문제가 6자회담의 진전 여부를 가를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핵 물질인 우라늄을 정제해 핵무기를 만드는 HEU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플루토늄탄은 있지만 HEU 프로그램은 없다는 것이다.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13일 타결된 6자회담에서 “HEU 프로그램은 없으며 앞으로 이를 입증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정보를 확보했으며 이를 한국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정보원이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HEU 프로그램 보유가 사실이라고 밝힌 것도 미국이 갖고 있는 증거에 기반을 둔 분석 결과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 정부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핵심 시설인 원심분리기 수십 대를 파키스탄 등에서 수입했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한국 정부에도 이를 알려줬다”고 말했다.

원심분리기는 여러 곳에 분산 은닉할 수 있기 때문에 탐지가 극히 어렵고, 일단 설치되면 장기간 노출되지 않고 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

13일 타결된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 초기 이행조치 합의’는 4월 13일까지 북한이 핵무기를 제외한 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 목록을 다른 회담 참가국들과 협의하게 돼 있다. 신고 목록에 오를 핵 프로그램엔 HEU도 당연히 포함된다는 게 한국과 미국의 견해다.

따라서 북한이 핵 프로그램 신고 목록 협의 과정에서 HEU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파키스탄 등에서 들여온 증거를 제시해 양국이 충돌하게 될 확률이 높다.

이 경우 한국은 북한이 핵 시설 폐쇄(shutdown) 조치를 취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하더라도 중유 5만 t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북한에 지원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핵 프로그램 신고 목록 협의가 원만하게 끝나는 것도 대북 에너지 지원의 조건이라는 게 회담 참가국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따라서 북한을 제외한 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을 상대로 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하라며 압력을 가하게 돼 회담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이 20일 “HEU 문제가 (6자회담) 협상의 결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외부에서 입수했다는 미국의 정보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거나 원심분리기를 다른 곳에 사용했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6자회담은 다시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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